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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노영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의 '불분림이렵(不焚林而獵)'

홍병문 베이징특파원

  • 홍병문 기자
  • 2019-01-10 17:15:42
[특파원 칼럼] 노영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의 '불분림이렵(不焚林而獵)'

주중대사 임기를 마치고 베이징을 떠나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난 7일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 영접실에서 만나 환담을 나눴다. 중책을 앞두고 중국을 떠나는 그에게서 적지 않는 긴장감도 느껴졌지만 표정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다부진 자신감이 읽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중국 대사라는 자리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의 부임 시기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이 정점으로 치닫던 때였다. 사실 지난 2년 가까이 중국에서 어려움을 겪은 사람은 노 전 대사뿐이 아닐 것이다. 기업인과 교민·주재원뿐 아니라 함께 나온 가족들도 모두 적지 않은 아픔을 겪었다.

정부 일각에서는 사드 사태가 큰 고비는 넘겼다고 하지만 이곳 현지의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지금도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 험한 폭풍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게 대다수 현지 교민들과 기업인·주재원들의 반응이다.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노 전 대사의 모습을 보면서 베이징 외교가와 현지 교민들은 한중관계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기대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자국 주재 대사 출신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적지 않은 의미를 둘 것이다. 올해 안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답방에서 노 실장이 중국과 한국의 난마처럼 얽혀 있는 정치·경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현명한 조언자와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물론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불거진 한중 외교의 여러 잡음을 거론하며 순탄하지 않은 한 해를 예상하는 시각도 많다. 미중 수교 40주년이자 북중 수교 70주년인 올 한 해, 중국의 관심이 미중 무역갈등을 해소하고 북한과의 우의를 더 돈독히 하는 데 집중될 것이라는 관측도 우리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노 전 대사는 떠나기 전 환담 자리에서 ‘불분림이렵(不焚林而獵)’이라는 서예 작품 한 점을 건네줬다. 평소 그가 좋아하는 ‘회남자 주술훈’에 나오는 중국 성어다. ‘선왕의 법도는 사냥을 해도 구덩이를 파 무리를 잡지 아니하고, 짐승 새끼를 잡지 아니하며, 연못을 말려 물고기를 잡지 아니하고, 숲을 태워 사냥을 하지 않는다(不焚林而獵)’는 주술훈의 한 대목이다. 회남자는 기원전 2세기 회남왕 유안이 식객들의 글을 모아 놓은 책으로 주술훈에 나오는 이 대목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크게 멀리 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국이라 자처하는 중국이 대국답지 않게 옹졸한 압박으로 한국을 쥐락펴락하겠다고 하는 판국이다. 시 주석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한반도에서 큰형님 노릇을 하겠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겉으로는 아시아운명공동체·인류공동운명체 운운하지만 중국은 이웃 나라 한국에게는 여전히 사드를 빌미로 거대한 장벽을 세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은근슬쩍 시비를 걸고 화를 돋우는 소인배 같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될 일이다. 주변 강대국의 날카로운 쇠꼬챙이 질에 그저 우리는 묵묵히 실력만 키우면 된다는 자세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가시를 세우되 먼 미래를 내다보는 매의 눈을 갖추고 날갯깃을 추슬러야 한다.

한반도 평화협상 외교전을 앞둔 올 한 해 우리는 거친 격랑과 폭풍우를 헤쳐나가야 한다. 중국은 올해 전 세계가 100년 만의 대변국에 직면했다며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엉덩이를 땅바닥에 납작 붙이고 가시를 세우고 독기만 품는다고 생존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격랑 속 대한민국호의 방향키를 쥐고 있는 청와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다.

가까운 이웃이지만 중국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되는 상대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양국 사이에 쌓인 장벽만 더욱 두텁게 만들 수 있다. 보다 적극적인 대중 외교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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