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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이 풀어내는 한민족의 기원]서유기 무대 火焰山에서...한반도인의 숨결을 느끼다

<5>시안~우루무치 오아시스 실크로드3,000km

  • 2019-04-09 17:20:38
  • 사외칼럼
[김석동이 풀어내는 한민족의 기원]서유기 무대 火焰山에서...한반도인의 숨결을 느끼다
빙링사 석굴


[김석동이 풀어내는 한민족의 기원]서유기 무대 火焰山에서...한반도인의 숨결을 느끼다

[김석동이 풀어내는 한민족의 기원]서유기 무대 火焰山에서...한반도인의 숨결을 느끼다

[김석동이 풀어내는 한민족의 기원]서유기 무대 火焰山에서...한반도인의 숨결을 느끼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둔황’

혜초 ‘왕오천축국전’ 발견된

세계자연문화유산 모가오굴

492개 석굴에 조각·벽화 풍부

고대 유적 보고 ‘투루판’

석굴사원 베제클리크 천불동

한반도인 추정 벽화 남아있어

서역과 교류 보여주는 증거로

중국의 산시성 성도 시안(西安)에서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주도인 우루무치에 이르는 장장 3,000㎞의 오아시스 실크로드. 황량한 벌판과 사막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지역을 연결하면서 교역이 이루어진 길이다. 북방의 초원 실크로드 이후 개척된 길로 ‘실크로드’ 하면 많은 이들이 바로 이 길을 생각한다.

◇시안~톈수이~란저우

시안은 옛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長安)이며 전한·서진·북주·수·당 등 열 개가 넘는 왕조가 1,000년 이상 도읍지로 삼았던 곳이다. 진시황의 무덤인 병마용은 이곳이 고대로부터 역사의 현장임을 웅변하고 있다. 시안에서 서쪽으로 350㎞를 가면 실크로드의 첫 관문이라 하는 톈수이(天水)를 만난다. 이곳에는 중국 4대 석굴의 하나인 마이지산 석굴이 있다. 우뚝 솟은 바위산에 1,600여년에 걸쳐 만들어진 수백 개의 동굴과 수천 개의 불상 조각, 그리고 절벽에 깎아낸 초대형 석불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다시 서쪽으로 300㎞ 정도 가면 황허강변에 있는 실크로드 교통 중심지인 란저우(蘭州)에 다다른다. 간쑤성 성도로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인근에 수많은 석불이 새겨진 빙링(炳靈)사 석굴이 있다.

◇우웨이~장예~자위관

란저우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우웨이·장예를 거쳐 서쪽으로 700㎞를 9시간 가까이 달려 새벽이 되어서야 자위관에 이르렀다. 자위관은 만리장성의 서쪽 끝으로 교통 중심지이자 군사요충지로 명대에 건축된 성문이 황량한 들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다시 서쪽으로 4시간 정도 달리면 380㎞ 거리에 있는 둔황(敦煌)이 나타난다. 란저우에서 ‘둔황’에 이르는 1,100㎞를 허시후이랑(河西回廊)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치롄산맥과 고비사막 사이에 있는 긴 복도와 같은 길이다. 사막화된 곳이 많은 지역이지만 치롄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연중 저지대에 공급되기 때문에 오아시스 도시와 실크로드가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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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의 모가오굴

◇둔황

둔황은 타클라마칸사막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한 오아시스 도시로 실크로드의 중심에 있는 동서 문화교류의 역사적 현장이다. 5호16국 시대에 서량의 수도였고 이후 북위·서위·북주·수·당·송·원, 그리고 이어서 명·청이 차지했다.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을 우회해서 교역로가 연결됐는데 둔황을 거쳐 톈산산맥의 북쪽 기슭으로 가는 길을 ‘톈산북로’, 남쪽으로 가는 길을 ‘톈산남로’라고 한다. 둔황을 거쳐 타클라마칸사막 남쪽의 쿤룬산맥 기슭으로 가는 길은 ‘서역남로’라고 한다.

둔황은 세계자연문화유산인 모가오(莫高)굴로 유명하다. 4~13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이 석굴에는 492개에 달하는 석굴과 수많은 조각, 벽화들이 잘 보존돼 있다.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서 발견됐다. 신라 시대인 723년께 혜초는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났다. 그는 해로를 통해 인도로 가서 4년간 여행을 한 후 중앙아시아를 거쳐 실크로드를 통해 장안으로 돌아와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히는 위대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김석동이 풀어내는 한민족의 기원]서유기 무대 火焰山에서...한반도인의 숨결을 느끼다
영국 고고학자가 찍은 짱징둥

청나라 시대인 1900년 어느 날, 토사를 치우다가 갑자기 벽이 무너지면서 오늘날 17굴(짱징둥)이라고 불리는 석굴이 하나 발견됐고 무수한 경전과 회화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영국·프랑스·일본 등의 탐사대는 이들 유물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져가 버렸다. 이때 프랑스 동양학자 ‘폴 펠리오’가 1908년 ‘왕오천축국전’을 가져갔고 이는 오늘날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됐다. 727년 쓰인 이 필사본은 인도와 서역 각국의 종교는 물론 풍속·문화 등에 관한 풍부한 내용이 실려 있어 동서 문화 교류를 웅변한 고전 여행기의 금자탑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세계 유일의 기록이어서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둔황은 사막 가운데 있는 도시이다. 인근에 있는 모래사막으로 이뤄져 바람이 불면 울음소리가 난다는 ‘밍사산(鳴沙山)’, 사막 가운데서 신기루같이 나타나는 오아시스 ‘웨야취안(月牙泉)’이 있어 오아시스 도시라는 것이 더욱 실감 난다.

◇산산~투루판

둔황을 뒤로하고 세 시간 정도 떨어진 류위안(柳園)으로 가서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600㎞를 달려 다음 날 아침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산산에 도착했다. 신장웨이우얼은 중국의 성급 자치구로 인구 약 2,200만명, 면적 166만㎢(남한의 약 16.7배)로 중국의 가장 큰 성이다. 중국 북서부에 자리 잡은 이 지역은 ‘서역(西域)’이라 불렸고 건륭제 때 ‘새로운 강역’이라 해서 신장(新疆)이라고 명명했다. 고대로부터 기마유목민의 터전이었던 신장 지역은 기원전 2세기께는 흉노가 장악했고 이후 한나라가 차지하나 다시 북방유목민 돌궐이 패권을 회복했다. 이후 위구르, 몽골, 카라키타이, 모굴 칸국 등이 지배했던 땅이다,

[김석동이 풀어내는 한민족의 기원]서유기 무대 火焰山에서...한반도인의 숨결을 느끼다
베제클리크 천불동

산산 인근의 쿠무타거사막을 둘러보고 투루판으로 이동해 서유기의 무대인 훠옌산(火焰山)·자오허(交河)고성·가오창(高昌)고성을 둘러봤다. 불교 석굴사원인 베제클리크 천불동은 투루판 동쪽 훠옌산 기슭 계곡에 있는데 석굴 중 하나에 한반도인으로 추정되는 벽화가 남아 있다. 7세기 당나라 시절부터 지어진 이 석굴은 일찍이 한반도인들이 서역과 활발한 교류를 가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김석동이 풀어내는 한민족의 기원]서유기 무대 火焰山에서...한반도인의 숨결을 느끼다
베제클리크 천불동 벽화 원내는 한반도인 추정

투루판도 사막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 연간 강수량이 55㎜에 불과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여름철 1시간 강수량도 안 된다. 이렇게 건조하기에 흙으로 지은 성, 무덤, 심지어 미라까지 고대 유적이 잘 보존돼 있다.

◇우루무치

투루판에서 200㎞ 서쪽으로 떨어진 우루무치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바람이 엄청나게 부는 지역을 지나게 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강풍이 부는데 바람이 세게 불 때는 대형차도 운행을 중단하고 길가에 피신한다. 수년 전 기차가 탈선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풍력발전 바람개비가 수도 없이 들어차 있다. 우루무치는 중국과 다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서역의 최대 도시이자 이슬람문화와 유목민의 풍속이 어우러진 도시로 여행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우루무치 인근에서 세계자연유산이자 한민족 시원지 또는 이동 경로와 관련이 있다는 해발 1,928m에 위치한 톈산(天山) 천지는 백두산 천지를 떠오르게 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실크로드에서 전개된 한민족 역사

북방의 초원 실크로드는 고대로부터 스키타이를 비롯한 흉노·선비·돌궐·몽골·여진 등 북방 기마유목민의 삶의 터전이었다. 대초원을 종횡무진 누볐던 이들이 세운 여러 나라가 흥망을 거듭했다. 바로 이곳에서 한민족도 삶을 개척해왔을 것이다. 빗살무늬토기·암각화·고인돌·고분·청동기 등 수많은 선사 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이 이를 보여준다.

오아시스 길이 열린 역사시대에는 한민족의 광범위한 교류 역사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5세기께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 무용도는 인도로부터의 염색기법 전래를 말해주고 ‘쌍영총’ 벽화의 연꽃무늬는 불교 전래, ‘각저총’ 씨름도는 서역인의 등장을 각각 보여준다. 1965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는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아프라시아브 궁전벽화가 발견된 바 있다. 오르콘강변에서 발견된 돌궐의 ‘퀼테킨 비문’에도 고구려 사신에 대한 기록이 있다.

백제 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 공예, 벽화, 유리구슬, 금동대향로 등 수많은 유물은 동서 교류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신라의 경우 미추왕릉의 유리구슬 목걸이, 황금보검은 그리스나 로마양식이라고 한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8세기 초 신라 시대의 교류를 증명하고 있다. 원성왕 무덤의 무인석도 서역인 모습이다. 흥덕왕 때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실크로드 해로를 일본에까지 연장하고 동북아 삼각 무역망을 형성했다.

고려 시대에도 개경 외곽의 벽란도는 한·중·일 무역 거점으로 국제 무역항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처용가’와 처용무의 ‘처용’도 페르시아나 아랍인이라고 한다. 발해 유적에서도 중앙아시아의 소그드 상인이 쓰던 은화와 기독교 영향을 받은 불상이 나타났다.

고구려 유민 출신인 고선지 장군은 실크로드의 개척자로 동서 문명 교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당 현종 시대인 747년 고선지 장군은 1만 군사의 결사대를 이끌고 구자의 안서도호부를 떠나 서진해 파미르고원을 넘어 힌두쿠시산맥의 해발 4,600m가 넘는 탄구령을 돌파, 토번을 장악했다. 이때 당은 중앙아시아와 파미르를 지배하면서 실크로드 최전성기를 누렸다.

한민족은 선사시대부터 북방 초원길을 통해 기마유목민족들과 더불어 삶의 흐름을 이어갔으며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오아시스 실크로드를 통해 널리 바깥 세계와의 교류를 확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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