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시세보기

서울경제

HOME  >  산업  >  기업

벤처로 4조 몰리는데…갈길 먼 혁신성장

벤처투자금 4년째 늘었지만
낡은규제 탓, 신사업투자는 감감

  • 이수민 기자
  • 2019-06-02 17:24:17
  • 기업
벤처로 4조 몰리는데…갈길 먼 혁신성장

올 한해 벤처로 투입되는 자금 규모가 4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 주도로 집행하는 투자금을 비롯해 정부 정책자금까지 풍부하게 유입되며 창업 생태계도 빠르게 확장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양적 팽창에 치중하다 보니 창업부터 투자·회수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데다 규제가 자리 잡고 있어 질적 도약이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벤처 신규투자금액은 7,45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377억원에 비해 16.9%나 증가하며 4년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4월 말 현재 549개사에 총 1조1,382억원이 투자돼 지난해 같은 기간의 492개사, 9,868억원에 비해 15.3%나 뛰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지난해 3조4,249억원이었던 신규투자 규모가 연말에는 4조원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다 기술창업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는 팁스(TIPS)에 대한 정부 지원 역시 지난해 1,342억원에서 올해 1,616억원(추경 제외)까지 늘려 잡은 상태다.

창업 현장에서는 조속한 규제 혁파와 성장 단계별 맞춤형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경제가 105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공적인 창업을 위한 경영환경에 대해 투자를 활성화하고(38.7%),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18.3%)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창업을 가로막는 규제로는 해외에 비해 지나치게 강한 규제(34.2%)와 신산업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규제(32.5%)를 지목해 최근 ‘타다 사태’로 불어진 공유경제 논란에서 정부가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수민·심우일기자 noenemy@sedaily.com

‘창업→투자→회수’ 선순환 고리로 ‘성공한 엑시트’ 만들어야

[혁신성장 핵심은 질적 도약]

<상>한국형 실리콘밸리 열쇠는


벤처로 4조 몰리는데…갈길 먼 혁신성장
한 스타트업 대표가 서울 강남 역삼동 팁스타운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서울경제D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스포츠카 브랜드 AMG는 모터스포츠 애호가이던 이 회사 직원이 퇴사해 지난 1967년 설립한 벤처 기업이 모태다. 사과밭에 공장을 세우고 고성능 엔진과 튜닝 제품을 만들어 성과를 내자 메르세데스벤츠는 1990년까지 이 회사 지분 50%를 사들였고 2003년에는 100%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이를 통해 메르세데스벤츠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고성능 스포츠카 브랜드 메르세데스AMG를 내부화할 수 있었고 AMG 설립자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히트는 요즘 말로 ‘성공한 엑시트(exit)’를 실현했다. 아우프레히트는 지분을 모두 넘긴 뒤에도 메르세데스벤츠의 레이싱카 프로젝트의 외주 사업자로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AMG가 인수와 피인수를 통해 윈윈한 사례라면 BMW를 전문으로 튜닝하는 독일 중소기업 AC슈니처와 포르쉐 전문 튜닝사 테크아트는 협력 방식을 지속하는 사례다. AC슈니처와 테크아트는 각각 BMW, 포르쉐와 쌓은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고성능차 마니아에게 특화된 모델을 공급하며 완성차 업체가 만들어낼 수 없는 독창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 같은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이 가능한 것은 독일에 자동차 튜닝 관련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벤처 생태계의 질적 도약이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는 가운데 이를 위해 ‘창업→투자→회수’의 선순환 구조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이 벤처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해 대기업은 신사업과 추가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창업가는 기존 사업을 ‘엑시트’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투자금을 새로운 도전에 투입하는 등 선순환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신사업 성장과 민간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야 벤처 생태계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대기업 ‘벤처 M&A’ 참여 유도

창업가는 새 투자금으로 재도전

선순환 생태계가 4차산업 이끌어

“정부, 신사업 막는 규제 살피고

민간 돈 흘러갈 물길 터줘야”


벤처로 4조 몰리는데…갈길 먼 혁신성장
지난 4월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팁스타운(S1)에서 이종흔 메스프레소 대표가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중소벤처기업부는 팁스(TIPS)에 참여하고 있는 인공지능(AI)분야 우수 창업팀의 후속투자 유치와 대기업 기술 제휴, M&amp;A 등 성장 지원을 위한 ‘2019년 제1회 비욘드 팁스’ 행사를 열었다./사진제공=중소벤처기업부

◇“벤처 생태계에 대기업 역할 늘려야”=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대기업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본지가 스타트업 대표 1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기업과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가격 후려치기(40.9%)’와 ‘대기업의 소극적인 M&A 관행(22.7%)’ 등이 지목됐다. ‘믿을 만한 중개기관이 없어서’라는 답변도 25%나 나왔는데 이는 대기업의 소극적인 태도와 중개기관 부재로 M&A를 통한 엑시트 시장이 활성화하지 않다는 업계의 인식을 보여준다. 투자 분야를 맡는 벤처캐피털(VC)에 대한 평가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VC 등 투자의 문제점은 무엇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재무제표 등 정량지표 중심 평가(38.9%)’ ‘신생 기업에 대한 불신(23.6%)’ ‘심사기관 전문성 부족(18.1%)’ 순으로 답했다.

이번 설문의 결과는 국내 벤처 생태계 시장에서 스타트업·대기업·VC 간 신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벤처 기업을 운영하는 최진수(가명) 대표는 “주요 플레이어들 사이에 신뢰가 쌓여 있지 않으면 아무리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면서 “대기업과 VC로부터 창업과 성장을 위한 자금이 적시 투입되고 대기업이 M&A를 하든, 스타트업 자체적으로 상장(IPO)을 하든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를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 고리가 한국형 실리콘밸리를 구축하는 핵심 열쇠”라고 지적했다.

◇“규제부터 풀어라”=바이오나 인공지능(AI), 공유 플랫폼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속속 선보이는 신산업을 가로막는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기업이 국내 M&A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도 결국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 개혁은 신사업 태동과 투자 활성화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규제를 풀어 신규 산업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이들을 VC·대기업 플랫폼으로 유도해 몸집을 키울 수 있게끔 하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규제 개혁 과정에서 기존 이해관계자와 스타트업의 충돌 국면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중심을 잡고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승차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는 이태희 벅시 공동대표는 “정부가 가닥을 잡지 못하고 규제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전통 산업인 택시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모빌리티 업계도 존립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신성장 동력을 키우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필수적인데 카풀·타다와 택시 간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투자가 끊기고 결국 신구 산업 모두 미래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액셀러레이터 관계자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존 규제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돈이 흘러가는 물길을 터주는 것”이라며 “부처 간 협의와 끈질긴 노력이 필요한 ‘핀 포인트’ 규제 완화에 집중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민간 투자 중심 벤처생태계로”=현재까지의 벤처 생태계는 정부의 의지와 정책자금이 이끌어 나간 측면이 컸지만 앞으로는 민간 투자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선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활성화하기 위해 금산분리 예외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는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일반 지주회사는 CVC를 설립할 수 없다. 김영덕 롯데엑셀러레이터 상무는 “자본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으로 흐른다”며 “대기업이 규제 때문에 미국 등 해외로 직간접 투자를 하는 것을 선호하는 현상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장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보완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스타트업과의 협력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결과가 상대적으로 더 불확실한데 대기업 문화는 한두 해 안에 성과가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 문제”라며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또는 인수에 따르는 리스크를 줄여주는 제도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이 안심하고 대기업·VC와 협업할 수 있게끔 기술탈취에 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는 창업벤처 생태계의 ‘신뢰’와 직결된 것이라 특히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수민·심우일기자 noenemy@sedaily.com



‘유니콘 육성·벤처자본 활성화’ 두토끼 잡는 팁스

[혁신성장 핵심은 질적 도약]

아이디어부터 스케일업까지 지원

졸업한 417팀 1.1兆 유치 성과도


벤처로 4조 몰리는데…갈길 먼 혁신성장

지난 2012년 가을 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장, 김영태 중소기업청 이스라엘 파견관, 배영임·표한형 중기연 책임연구원은 이스라엘로 떠났다. 기술 인큐베이팅 프로그램(TIP·Technological Incubating Program)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 기술창업 육성정책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TIP은 1991년 이스라엘 수석과학관실(OCS)이 주축이 돼 시행한 민관 공동 창업기업 육성 프로젝트다. 이들은 이갈 에를리흐 요즈마그룹 회장을 비롯해 OCS에서 TIP 프로그램을 총괄한 요시 스몰레르, 인큐베이터에 근무하는 매니저, 현지 스타트업 대표 등을 만났다. 배영임 당시 책임연구원(현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인큐베이터 정책을 주도하는 것은 공공 부문이었는데 이스라엘은 투자·보육이 함께 이뤄지면서 민간 투자자와 공무원 사이에 ‘스타트업을 육성한다’는 공동 목표가 형성돼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해 12월 표 책임연구원, 김 파견관과 함께 발표한 ‘벤처 생태계의 내실화 촉진을 위한 정책연구-이스라엘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에 이 같은 문제의식을 녹여냈다. 이 보고서는 이듬해 5월16일 국정과제로 시행된 ‘팁스(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지원)’의 밑바탕이 됐다.

2일 스타트업 업계와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팁스는 시행 6년 만에 기술창업기업을 육성하는 대표 정책으로 자리매김했다. 정부는 예비 창업팀을 지원하는 ‘프리팁스(Pre-TIPS)’, 팁스를 통해 성장한 기술창업기업의 스케일업(scale-up)을 돕는 ‘포스트팁스(Post-TIPS)’까지 마련하며 팁스를 ‘예비창업→창업보육→스케일업’을 포괄하는 민관 협업 프로젝트로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팁스의 취지는 이스라엘의 TIP처럼 민간 투자자와 정부가 공동으로 우수 기술창업팀을 혁신기업으로 키울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유니콘 기업 육성과 벤처자본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민간 투자자가 창업팀을 자발적으로 선발·보육하고 정부가 관련 네트워킹, 연구개발(R&D), 판로개척 지원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정부가 우수 벤처캐피털(VC), 액셀러레이터를 운영사로 선정하면 운영사는 신규과제 예산의 1.5배수 이내에서 유망한 창업팀을 선발한다. 이후 정부의 심사를 거쳐 팁스 지원을 받을 창업팀이 최종 선정된다. 선발된 창업팀은 운영사의 인큐베이터에서 최대 3년 동안 보육을 받게 된다. 운영사는 이들에게 1억~2억원의 투자금을 제공한다. 정부는 최대 5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사업화·해외마케팅에 각각 최대 1억원씩 제공한다. 엔젤투자를 최대 2억원까지 연결해주는 것은 덤이다.

팁스의 성과는 톡톡히 나타나고 있다. 중기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팁스 지원을 받은 창업팀은 총 679곳이다. 2013~2017년 팁스에 참여한 417개 창업팀은 팁스를 거치며 총 2,193명을 신규로 채용했다. 기업당 5.3명의 추가 고용이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팁스 프로그램이 끝난 후 국내외로부터 1조1,408억원을 추가 유치하기도 했다. 이 중 42곳은 해외 VC로부터 약 8,707만달러(약 1,037억원)를 투자받았다. 팁스가 ‘벤처 활성화’의 마중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팁스를 스케일업 단계와 예비창업 단계까지 아우르는 정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올 3월 ‘제2 벤처 붐 확산 전략’에서 팁스 체계를 ‘프리팁스→팁스→포스트팁스’로 고도화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포스트팁스가 신설된 것은 지난해 6월. 팁스를 ‘졸업’한 회사 중 △연 매출 10억원 이상 △연 수출액 50만달러 이상 △상시근로자수 20명 이상 △후속투자 20억원 이상 △10억원 이상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기업 중 민간 후속투자를 10억원 이상 유치한 업력 7년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상용화·해외진출·마케팅 등 사업화 자금을 최대 5억원까지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에만 총 35개사가 150억원을 지원받았다.

아울러 정부는 지난해 프리팁스 시범사업을 통해 12개사를 지원했다. 지방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창업팀을 발굴해 예비 팁스 창업팀으로 육성하고 각지 엔젤투자를 촉진하는 게 핵심이다. 액셀러레이터나 기존 팁스 운영사가 창업팀을 추천한 후 정부가 이를 선발하면 이들에게 사업화 자금을 최대 5,000만원까지 매칭 지원하게 된다. 올해에는 프리팁스를 수도권 지역까지 확대해 전국적인 예비창업 플랫폼으로 정착시키는 게 목표다. 중기부 관계자는 “2019년도 추경안이 통과되면 곧바로 프리팁스 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