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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톨스토이를 만나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 2019-06-07 17:04:22
  • 사외칼럼
[기고] 톨스토이를 만나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벌을 받은 천사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만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천사는 구두수선 보조를 하며 수년에 걸쳐 답을 찾는다. 사람 안에 있는 것은 측은지심 같은 사랑이었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힘이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다. 사람은 가족을 넘어 타인에게까지 이르는 넓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 천사가 얻은 마지막 답이었다. 러시아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지난 1885년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줄거리다. 현재 우리 사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 있는가. ‘촛불’을 내세우며 오만과 불통에 빠진 청와대. 협치와 현실감 있는 정책을 내세우지 못하는 여당, 그리고 정책 대안이 없는 색깔론적 사고방식의 제1야당이 있다. 실망한 대의민주주의의 한숨이 시장 구석의 포장마차 불빛을 타고 올라온다. 사건 사고가 연일 신문 일면을 장식하고 오래전 사망선고가 내려진 공교육이 미라처럼 방치된 사회. 젊은 미래의 주인공들이 정규직을 희망하며 내쉬는 한숨이 곳곳을 채우는 미세먼지 자욱한 미래가 한국 사회에 널브러져 있다.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 허락되지 않았는가. 협치의 정치를 펼쳐야 할 여야의 동거가 허락되지 않았다. 버닝썬·김학의·장자연 사건은 법 앞에 만인의 평등함이 없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허울뿐인 동반성장은 중소기업의 자가발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험한 작업장으로 내몰리는 비정규직에게는 거부권의 선택이 허락되지 않았다. 대학과 부동산은 서울과 지방으로 나뉘었고 강남의 서울은 또 그들만의 스카이캐슬로 타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회 곳곳에 위기감이 팽배했으나 국가의 조정기능 또한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도대체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토록 아프고 목마르게 하는가.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신에게 벌을 받는 천사는 굳게 닫힌 교회 문 앞에 서 있었다. 지나가던 구두 수선공의 측은지심과 수선공의 아내가 보인 따듯함이 신이 내린 첫 번째 과제를 푸는 열쇠가 된다. 톨스토이의 바람대로 사랑과 이해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경제전망이 어둡고 자영업이 쓰러져가고 젊은이의 직업이 보장되지 않는 지금, 여야의 불협화음은 모두가 자멸하는 길임을 명심하라. 여야가 만나 민생을 논의하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이 한국 경제의 미래여야 한다. 대기업이 저지른 불법이 자연스러운 행위로 치부되고 법 앞에 만인의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법의 효력은 폭력과 다름없을 것이다. 법의 준엄과 형평을 보여야 할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서울과 지방의 이분법이 더는 사회를 가르는 잣대가 돼서도 안 될 것이다. 다음 총선은 지금 여야의 행실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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