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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세븐오크스 전투

1816년 서부개척 놓고 총격전

[오늘의 경제소사] 세븐오크스 전투
세븐오크스 전투를 묘사한 그림./위키피디아

1816년 6월19일 영국령 북미 레드식민지 부근의 세븐오크스. 영국 식민지 개척회사들끼리 전투가 벌어졌다. 분쟁의 핵심은 모피 교역권과 신거주지 개척.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이민을 대거 모집한 허드슨만 회사는 서부 미개척지에 사람을 보냈으나 강한 저항에 맞닥뜨렸다. 프랑스 모피상인과 원주민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메티스는 이 지역을 자신들의 땅으로 여겼다. 허드슨만 회사가 메티스의 사냥을 제한하고 부의 원천인 모피와 말린 들소고기의 거래를 통제하자 불만이 터졌다. 허드슨만 회사와 경쟁 관계였던 북서부 회사는 메티스와 원주민, 일부 영국인들을 부추겼다.

영국이 북미 식민지 서부를 개척하기 위해 1779년 설립한 북서부 회사는 큰형 격인 허드슨만 회사(1670년 설립)가 사사건건 사업에 간여하자 친프랑스 세력을 모았다. 혼혈족인 메티스와 프랑스 주민, 원주민들은 북미 모피 교역 시장을 장악했던 세력. 영국 허드슨만 회사가 도시에 대형 거래소를 설립한 반면 프랑스 계열의 모피상들은 원주민 마을로 직접 찾아가 임시 거래소를 개설해 모피를 갖고 있는 원주민들의 호감을 샀다. 당시까지 북미 최대의 상품이던 모피 시장도 자연스레 프랑스계로 넘어갔다. 후발 주자인 북서부 회사는 몬트리올 함락(1760년) 후 구심점이 사라진 프랑스계의 환심을 사는 영업전략을 세웠다.

프랑스계들이 세운 변방의 거래소를 인수하던 북서부 회사는 허드슨만 회사가 아일랜드 이민들의 거주지 개척 등을 이유로 내륙으로 파고들자 노골적으로 지역민들을 규합했다. ‘곧 쫓겨날 처지가 될 것’이라고 믿은 지역민들은 똘똘 뭉쳤다. 반면 허드슨만 회사는 모피 교역 경험이 전혀 없는 미국인을 지역 대표로 임명해 주민들의 원성을 샀다. 갈등하던 양쪽은 1812년 초여름 대규모 총격전까지 벌였다. 승자는 메티스 세력. 사람 수(65명)가 많았던데다 승마와 사격술에 능했기 때문이다. 메티스 측 사망자는 한 명이었던 반면 이들과 맞선 영국 개척민은 28명 중 21명이 죽었다.

전투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영국은 상황 정리에 나섰다. 마침 미국과의 전쟁 직후여서 영국은 새로운 갈등을 피하려 사태를 서둘러 봉합하고 북서부 회사도 1821년 허드슨만 회사에 통합시켰다. 해묵은 갈등은 1869년 메티스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영국은 메티스 강온 양면 정책으로 이들을 가까스로 껴안았다. 생존권을 건 전투가 벌어졌던 세븐오크스의 오늘날 이름은 위니펙. 캐나다 매니토바주의 주도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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