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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9주년 사설] 근본이 바로서면 살 길이 열린다

미중 패권전쟁·日보복·보호무역
투쟁만 난무하는 무질서의 세계
전략적 모호성으론 국제왕따 초래
자유민주·시장경제 등 정체성 바탕
분명한 원칙 세워 대처해 나가야

  • 2019-07-31 17:30:01
  • 사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경제 환경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은 물론이고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뒤엉켜 위기가 고조되는 모습이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연상시킨다. 주요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은 패권 전쟁을 벌이면서 세계 지각판을 흔들어놓고 있다. 미중 대립은 무역·기술에 이어 에너지·군사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내세워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도전장을 던지고 나섰다. 미국이 이를 용인할 리 없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해서든 저지하려고 한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관세장벽을 높이면서 첨단기술 수출규제와 지적재산권 강화에 나서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 거대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주변국들은 어쩔 수 없이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중 양국은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에 자신의 편에 서라고 공공연히 압박하고 있다. 이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는 우리나라는 이제 인도·태평양전략이나 화웨이 사태와 관련해 미중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가뜩이나 북한 핵 문제로 안보 불안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중 패권 전쟁과 한일 과거사 갈등까지 갈수록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일 관계가 느슨한 틈을 타 동해에서 도발을 일삼고 있다.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자유무역질서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보호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뿐 아니라 일본·유럽연합(EU)·한국 등 동맹국에도 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다. 미국은 자유무역질서의 근간인 세계무역기구(WTO)도 무력화할 태세다. 일본도 미국 따라하기에 나섰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징용 배상 판결을 트집 잡아 수출규제를 통해 한국 미래 산업의 싹을 짓밟아놓겠다는 의중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세계 경제는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4차 산업혁명의 물살이 빨라지면서 미래 먹거리 준비는 발등의 불이 됐다. 가뜩이나 기존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신성장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긴다면 우리가 설 자리는 없다.

이제 우리나라의 생존전략을 다시 짜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분명한 원칙이 없이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왔다.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이다. 사드 때도 그렇고 화웨이 사태 때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은 100년이나 이어질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우리는 당장 5년 뒤를 대비한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위협을 느낀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러다 보니 모든 나라로부터 외면받는 신세가 됐다.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논어 학이(學而) 편에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이 나온다. 근본이 바로 서면 살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있어 근본이란 무엇인가. 바로 국가 정체성이다. 헌법에는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천부적 인권 등을 밝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분명한 원칙을 세워 당당하게 대응해나가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자기들 편에 서라고 요구할 경우 우리가 고민하고 행동할 기준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어느 나라가 우리와 핵심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가가 판단의 잣대가 돼야 한다.

지난 2년간 우리 정부의 정책은 정체성과 맞지 않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안보정책만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등 핵심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는 계속 엇박자를 내왔다. 북한 핵 문제가 대표적이다. 우리 정부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강조하는 미국보다는 제재완화를 동반하는 단계적 해법을 주장하는 북한·중국의 입장에 동조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의 틈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로 초래된 것은 안보위기다. 안보를 지키는 최선책은 스스로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국들을 우리 힘만으로 상대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힘을 키우되 부족한 부분은 동맹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은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시장경제를 무시하는 정부 만능주의 정책이 기승을 부리면서 온갖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정규직화, 성과이익공유제 등 포퓰리즘 정책들이 난무하면서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우리 경제에 꼭 필요한 체질개선과 노동시장 개편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가운데 신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규제개혁도 지지부진하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안보도 경제도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에서 현실성 없는 정책으로 시간을 허비하면 대한민국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을 다시 짜야 할 시점이다. 그 해법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살아 꿈틀대는 나라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것만이 벼랑 끝에서 우리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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