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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베트남

  • 정동철 기자
  • 2019-08-13 14:31:18
  • 스포츠
<서울경제 골프매거진>아시아에서 골프의 여명이 밝은 건 이미 100여 년 전이고, 베트남은 조금 늦은 경향이 있지만 점점 높이 떠올라 밝은 빛을 발하고 있다.

굿모닝, 베트남
라구나 골프 랑코는 닉 팔도 경이 베트남의 중부 해안에 설계한 챔피언십 코스로, 베트남 골프의 순박하고 이국적인 매력을 잘 담아냈다.

아마 다른 곳이었다면 불붙은 거대한 골프볼을 그려 넣은 SUV가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미줄처럼 얽힌 도로 위를 오토바이와 인력거가 정신없이 오가고 화려하고 웅장한 탑들의 그림자가 드리운 하노이에서는 나스카 자동차경주장의 손수레만큼이나 눈에 띄었다.

토요타 포추너 운전석에 앉은 둑 팜은 혼을 빼놓는 아침의 러시아워를 헤치며 로터리를 돌고 사거리를 가로질렀는데, 이 도시에서 신호등은 거의 장식품에 가깝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교통경찰은 팜의 자동차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한쪽 모퉁이에 모여선 어린 학생들은 엄지를 치켜들고 베트남어로 소리를 질렀다. “대충 해석하자면, ‘와, 아저씨, 멋있어요!’라는 뜻이다.” 팜은 자동차 옆면에 그려 넣은 이미지에 대한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하지만 저 아이들이 골프볼이 뭔지 알 것 같지는 않다.”

현재 서른한 살인 팜도 저 나이었을 때는 전혀 몰랐다. 그때가 1990년대 초였고, 당시 하노이에서는 골프를 새로운 스포츠라고 부를 수조차 없었다. 아예 존재하질 않았으니까. 팜도 그때는 베트남의 국민적인 스포츠인 축구와 일종의 제기차기인 다카우를 즐겼다.

그러다가 1997년에 아시아의 다른 곳에서 유행하던 골프에 팜도 마침내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모든 시초는 수도인 하노이 서쪽으로 48km 거리에, 호수로 에워싸인 반도에서 문을 연 킹스아일랜드였다. 베트남 북부 최초의 골프코스였다. 공무원이었던 팜의 아버지가 행사에 초청을 받았고, 당시 열한 살이던 아들을 데려갔다. “처음으로 연습 스윙을 했는데 볼이 높고 곧게 날아갔다. 거기 모였던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아드님이 타고났네요!’라고 말하던 게 기억난다.” 팜은 말했다.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는 골프에 매료되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팜은 골프에 더 몰두할 수 있는 호주의 브리스베인으로 진학했다. 8년 뒤에 그는 호주의 억양이 두드러진 완벽한 영어 실력과 호주 PGA 회원자격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호주 PGA에 입회한 베트남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그리고 아직까지는 유일하다). 그 후로 하노이에서 골프아카데미 두 곳과 골프숍 한 곳을 차려서 운영 중이다. 또 베트남 TV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골프 레슨 프로그램도 진행하면서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의 대표적인 인물을 넘어 베트남의 오늘(자본주의가 성장하는 공산주의 국가)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굿모닝,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스카이 레이크 리조트의 레이크코스는 2012년에 문을 열었다. 짙은 녹음 속에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고 있는 곳이다.

일본에 골프가 상륙한 지 한참 만에, 그리고 보다 최근에 들불처럼 번진 한국과 중국에 이어 베트남에서도 지난 10년 동안 부유한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골프 인구가 크게 증가하며 코스 건설 붐도 일었다. 그렉 노먼과 잭 니클로스 같은 거물들을 앞세운 레이아웃이 남쪽의 호치민에서부터 유명한 설계가인 브라이언 컬리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하롱베이를 굽어보는 곳에 눈부신 코스를 만들어놓은 북쪽의 중국 국경지대에 이르기까지 줄을 잇는다.

베트남 전역에서 다른 의미를 연상시킬 수 있는 지명들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골프여행지로 변모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하이반 고개 인근의 랑코 마을에는 닉 팔도가 설계한 근사한 코스(2개의 럭셔리 호텔에 딸린 시설)가 산과 바다 사이에 펼쳐져 있고, 논을 활용한 해저드에서는 물소가 풀을 뜯는다. 미국 군사작전의 중심 기지였던 다낭과 그 일대에서는 노먼과 니클로스, 그리고 콜린 몽고메리 등이 설계한 4개의 코스 중 한 곳에서 라운드할 수 있는 패키지가 성행하고, 특히 몽고메리 링크스 주변으로는 풍상에 바랜 기관총 포대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올 여름에 개장 예정인 다섯 번째 코스도 전쟁의 잔재를 끼고 있다. 바로 콘크리트로 지은 벙커다. 하지만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가 만들고 있는 레이아웃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해안에 아름답게 출렁이는 부지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존스 2세는 말했다. “이 땅에는 풍부한 역사가 깃들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보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은 골프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결정이었다.”

굿모닝, 베트남
킹스아일랜드의 캐디들(대부분 여성이고, 대체로 명랑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은 황금곰의 웅장한 디자인이 지난 매력을 한 단계 더 높여준다.

베트남에는 이런 곳들이 많다. 무엇보다 미국의 서해안 전체보다 더 길게 이어지는 모래사장 덕분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베트남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공간의 제약이 큰 나라들보다 향후 골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정치적인 기류도 우호적이다. 정부의 반부패 정책으로 새 코스 건설에 제동이 걸린 중국과 달리, 베트남의 여당은 공급 증대 목표를 천명했다. 총리실에서 밝힌 계획에 따르면 2020년까지 89개의 신설 코스가 완성돼 전체 개수가 지금의 거의 두 배에 달할 예정이다.

이런 프로젝트의 재원은 지금까지 주로 해외에서 조달됐다. 그러나 베트남 골프의 다른 면들처럼 이 부분도 국내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둑 팜이 처음으로 스윙을 했던 킹스아일랜드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하노이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거리인 선창까지 자동차로 이동한 후 보터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너야하는 이곳은 원래 1997년에 태국의 한 사업가가 개발했다. 하지만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응웬 티 응아에게 넘어갔는데, 그녀는 60대의 나이에도 머리를 짧게 치고 꽃무늬 패턴의 옷을 선호하며 베트남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손꼽힐 만큼의 재력가다. BRG그룹(은행업과 부동산, 소매유통업을 아우르는 재벌 기업)의 회장인 응아 여사는 거의 숭상에 가까운 존경을 받고 있다.

하노이의 무더운 어느 날 오후, BRG 소유 은행의 회의실 라운지 의자에 앉은 그녀 옆으로는 수행원이 빙 둘러 서 있었다. 응아 회장은 미소 띤 얼굴로 말을 했고, 정교한 손짓을 구두점처럼 활용했다.

처음에는 골프 자체 때문에 골프에 매료된 게 아니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가 골프에 처음 입문한 계기는 약 20년 전의 한 기업 행사였다. 그날 그녀는 플레이하지 않았지만 두 가지가 뇌리에 남았는데, 에메랄드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업계의 거물들이 매우 많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봤을 때 골프가 사업상 좋은 기회라는 것이 너무나 확실했다.”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 다음 얘기는 익히 알고 있다. 잘 맞은 몇 번의 샷, 골프광의 탄생. 그 후로 응아 여사의 골프에 대한 애정은 점점 깊어졌고, 오죽하면 자녀들이 침대 옆에 걸어놓으라며 손 글씨로 이렇게 적은 액자를 선물한 것은 두고두고 가족들 사이에서 농담거리가 됐다. “골프는 내 사랑, 골프는 나의 삶.”

그녀는 바쁜 일정이 허락하는 한 자주 플레이를 한다. 주로 주말에 자신이 소유한 코스들를 즐겨 찾는다. 그것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킹스아일랜드를 매입한 직후에 응아 여사는 두 번째 코스를 목록에 추가했고, 작년에는 세 번째인 킹스코스에서 개장식을 했다. 호숫가의 부지를 잘 활용한 곳으로 막판으로 갈수록 흥미가 고조되며 아일랜드 그린을 갖춘 파3의 19번홀은 승부를 결정하는 잊지 못할 마지막 무대다.

굿모닝, 베트남
베트남에서 니클로스가 처음으로 설계한 레전드힐은 홀마다 그린이 2개이며, 당당하고 개성이 넘치는 BRG의 응웬 티 응아 회장이 주인이다.

잭 니클로스 2세가 설계한 킹스코스는 베트남 전역에 이미 세 곳을 짓고 2020년까지 다섯 곳을 더 완성하기로 계약한 BRG와 니클로스 그룹의 대형 프로젝트다. 응아 여사는 각 코스마다 독특한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킹스코스의 경우 그 역할은 아일랜드 그린의 19번홀이 완수했다. 황금곰이 설계한 하노이 지역의 또 다른 코스인 레전드힐에서는 모든 홀마다 2개의 독특한 그린 콤플렉스가 있어서 이틀 연속 플레이를 하더라도 새로운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설계가와 소유주 사이의 긴밀한 협조의 결과물이고, 양쪽 모두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는 경험이 될 수 있다.

“설계가로서 나는 늘 좋은 코스 전략에 우선적으로 집중한다.” 니클로스 2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응아 여사와 작업을 하면서 아름다움과 난이도고 전략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사실 이런 것들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탁월한 전략을 성취하면서도 아름답고 까다로운 코스를 만들 수 있다.”

베트남에서 골프가 시작되던 시기에는 푸른 정원 스타일의 코스들이 주를 이뤘다. 이는 아시아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폭포가 많고 샷거리 부담이 심한 곳들이었다. 이런 취향은 지금도 지배적이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미니멀리즘도 뿌리를 내렸다. 그런 시도가 결실을 맺은 곳 가운데 하나가 하노이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북동부 해안의 동호이라는 도시다. 산책로에 거리음식을 파는 노점이 가득하고 피시소스의 냄새가 풍기는 해변과 더불어 동호이는 퐁나 동굴로도 유명하다. 통로가 미로처럼 얽힌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지하 동굴이다.

하지만 브라이언 컬리의 눈을 제일 먼저 사로잡은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몬터레이 출신으로 성격이 느긋한 쉰아홉 살의 컬리는 아시아 전역에서 걸음마 단계인 골프를 두루 목격했다. 아시아에서 그가 완성한 작업에는 중국의 초대형 개발 프로젝트인 미션힐스 두 곳이 포함돼 있다. 컬리는 5년 전에 중국 정부가 코스 건설에 철퇴를 가하면서 시장이 위축되자 베트남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동호이의 길게 뻗은 때 묻지 않은 새하얀 모래언덕을 발견했다. 설계가들에게 그건 꿈과 같았다.

컬리는 그 후로 베트남의 부동산개발 회사인 FLC와 동호이에서 10개의 코스를 짓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장기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이 지역을 찾게 된다. 하늘이 청명한 이날 아침에 그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해변을 등지고 절묘하게 굴곡을 매만진 그린에 서 있었다. 그의 뒤로는 푸른 파도가 철썩였다. 양쪽으로는 흰 모래언덕이 서 있었다. 남중국해의 스트림송을 상상하면 아마 비슷할 것이다.

이곳은 컬리가 처음 완성한 동호이 코스의 15번홀이었다. 또 한 곳을 착공해서 올 여름에 개장할 예정이다. 두 곳 모두 아직 새것이라 A코스와 B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컬리는 포레스트듄스와 오션듄스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풍경이나 느낌이 비교적 생소하지만 이곳이 추구하는 플레이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나는 볼을 찾기 힘든 코스를 좋아한다.” 컬리는 말했다. 해변의 높은 곳에 선 그의 시야에는 A코스가 한 눈에 들어왔다. 페어웨이는 넓지만 정식 벙커는 단 1개도 없이 오로지 단단한 모래 황무지만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곳을 찾은 많은 골퍼들은 볼을 몇 슬립 정도 잃어버리지 않으면 골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스스로 처벌을 자처하는 것 같다.” 해변을 따라 조금 남쪽에 위치한 퀴논에서 그가 만든 또 다른 코스에서 열렸던 한 행사에는 약 300명의 골퍼가 참가했는데, 하나같이 화이트 티에서 플레이를 했다. 사흘 동안 그 코스에서 80타 이하의 스코어를 기록한 골퍼는 단 4명이었다. 그런데도 “다들 나한테 다가와서 코스가 충분히 도전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굿모닝, 베트남
브라이언 컬리가 동호이에 설계한 ‘A코스’의 15번홀은 남중국해를 옆에 끼고 있어서 광활한 모래밭을 자랑한다.

다른 무엇보다 실력 있는 선수의 비율이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베트남의 골프 인구가 얼마나 급성장을 했는지 더 확연히 할 수 있다. 현재의 추산 인구는 약 3만 명으로 20년 전에 비해 10배나 늘어났다. 골프 붐이 일기 전까지 이 나라에서 골프로 가장 명성을 누린 사람이 골퍼도 아닌, 얼 우즈와 전쟁터에서 우정을 나눈 덕분에 그의 유명한 아들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된 베트남 참전 용사 응웬 “타이거” 퐁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추세다.

두 세대가 흘러 타이거 퐁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고 타이거 우즈는 아직 베트남을 찾은 적이 없다. 이 나라의 골프를 상징하는 인물은 둑 팜이 됐다. 그의 레슨 프로그램인 ‘온 그린’은 매달 2~3개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서 전국으로 방영된다.

촬영 때문에 팜은 출장을 갈 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쉬는 날이고, 하노이 도심을 지나 외곽으로 한가롭게 운전을 하는 그의 자동차 트렁크에는 클럽 세트가 실려 있다. 그는 한적한 길을 택했고 수도의 웅장한 건물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논이 펼쳐지더니 오토바이 대신 쟁기질을 하는 소들이 나타났다. 한적한 마을의 풍경은 국수가게와 농장의 노점과 자동차 부속품점을 이어붙인 것처럼 느릿느릿 흘러갔다. 그러다가 좁은 교차로의 한 귀퉁이에서 웬 노파가 허름한 골판지 가건물 밑에서 웅크리고 앉아 진공 포장한 재활용 골프볼을 팔고 있었다. 표시는 없었지만 그곳은 스카이레이크 리조트&골프클럽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2012년에 개장한 이곳에는 스카이와 레이크, 이렇게 2개의 코스가 있는데 이름 있는 설계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완숙해지고 곧은 드라이버샷을 요구하기 때문에 팜이 즐겨 찾는 곳이다. 호수와 푸른 계곡이 있고 저 멀리 거친 산맥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풍경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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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부릉. 하노이의 구도심에서는 오토바이 소리가 끊이지 않고 늘 활기가 넘친다. 골프는 베트남의 힘이지만 이 나라가 지닌 타고난 힘은 위대한 문화와 국민에게서 나온다.

잠시 후 팜은 레이크코스의 1번홀에 올라섰다. 그 뒤를 캐디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는데 베트남 코스에서는 빠지지 않는 캐디의 존재도 이곳의 대표적인 매력 가운데 하나다. 캐디가 아니었으면 공장이나 논에서 노동을 하고 있었을 젊은 여성이 대부분인 그들은 플레이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으며 좋은 샷에는 축하를 건네고 나쁜 샷은 함께 안타까워한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한 다른 나라의 평온한 캐디들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팜의 경우에는 스크래치 플레이어라 축하할 일이 많았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파4 홀은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지기 때문에 습지를 넘어가려면 거리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팜은 라인을 파악한 후 한 걸음 물러나서 주변을 돌아봤다. 베트남 전쟁 때 지상전은 이렇게 북쪽까지 올라오지 않았지만 폭격은 달랐다. 당시를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리지만 팜도 그 참사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서 벌어진 그 역사들을 아는 상황에서 이렇게 주변을 돌아보면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는 말했다. “그런데 내가 바로 여기서 골프를 하고 있다니.”

그는 왜글을 한 후 스윙을 했다.

“와!” 그의 캐디가 환호성을 지르더니 까르르 웃었다.

타이틀리스트 모자를 눌러쓴 팜도 미소를 지었다. 다른 곳에서 유래된 골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자의 행복한 옆모습에 그의 조국의 위상이 겹쳐 보였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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