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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2> 에어컨의 야누스적 두 얼굴

시원해진 실내만큼 뜨거워진 지구
타인 고통 수반한 '문명의 利器'

  • 최형욱 기자
  • 2019-08-16 15:04:11
  • 바이오&ICT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2 에어컨의 야누스적 두 얼굴
에어컨 실외기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외부 모습./연합뉴스

올해 초여름쯤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설치기사에게 연락을 했다. 지난해 가을에 입주한 후 에어컨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가 날씨가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하자 부랴부랴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날 젊고 예의 바른 직원 두 명이 집을 찾아왔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에어컨은 지난 2012년 구입한 것으로 스탠드형과 벽걸이형이 결합된 이른바 ‘멀티형’ 제품이었다. 당연히 스탠드형은 거실에 놓게 됐다. 벽걸이형은 우리 부부가 서재 겸 작업실로 사용하는 작은 방에 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치기사는 그 방에는 에어컨 설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아파트 구조상 거실과 안방에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에어컨 실외기였다. 멀티형 제품은 두 개의 에어컨이 하나의 실외기를 공유하게 되는데 우리가 벽걸이형을 설치하기를 원했던 방은 거실과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서재에 에어컨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외벽에 지지대(앵글)를 부착해 별도의 실외기를 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006년부터 시행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에어컨 실외기는 건물 내에 설치하는 것이 의무였다. 젊은 설치기사는 이와 같은 사항들을 고려해 우리의 요청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앞으로 건물 외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에어컨 실외기는 점점 보기 힘든 풍경이 될 것이다.

대형 작업장 습도 조절장치로 개발

내부 온도·공기 인공적 조절 가능

120여년 만에 필수가전 자리매김

일상 생활의 쾌적함 선사하지만

온실가스 내뿜어 지구 온난화 주범

에어컨과 실외기라는 연결된 두 개의 기계장치를 통해 우리는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게 됐다. 이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두 얼굴을 가진 문(門)의 수호신인 야누스를 연상시킨다. 한편으로 에어컨은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적정한 온도와 습도의 공기를 뿜어낸다. 하지만 실내의 쾌적한 공기는 무(無)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실외기는 딱 그만큼의 불쾌한 열기와 소음, 그리고 응축수를 내가 거주하는 공간 밖으로 내보낸다. 작용과 반작용이다. 에어컨이 제공하는 편의는 타인의 고통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테크놀로지다.

오늘날 우리는 에어컨을 냉방기로 알고 있지만 애초에는 대규모 작업장의 습도를 정밀하게 조절하기 위한 장치로 개발됐다. 정밀하게 습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업종은 인쇄업이었다. 습도 변화에 따라 종이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고품질의 인쇄 작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1902년 브루클린의 한 인쇄공장이 이 문제의 해결을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1876~1950년)에게 의뢰했다. 캐리어는 구리로 만든 코일에 냉각제를 채우고 그 위로 공기를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습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아이디어로 1904년 특허를 출원했다. ‘공기조절장치(An Apparatus for Treating Air)’라는 제목의 특허는 “공기에 포함된 액체 입자와 고체 불순물을 차단해 분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말하자면 자연 상태에서 규칙적·불규칙적 변화를 반복하는 공기의 상태를 인공적으로 균질하게 만드는 것이 에어컨의 목적이다. 이는 그 이름에도 잘 드러나 있다. 에어컨은 ‘에어컨디셔너’의 준말인데 영어의 ‘컨디션’이라는 동사는 ‘길들이다·훈련시키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즉 캐리어의 발명은 야생마를 길들여 인간의 운송수단으로 활용한 것처럼 자연 상태의 공기를 훈련시켜 산업현장 또는 인간생활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일단 습도를 마음먹은 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자 곧 온도도 인간의 통제 대상이 됐고 나아가 공기의 질 자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어컨은 20세기를 거치면서 미국 사회를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각지의 일상생활에 심대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처음에는 주로 정밀한 제조작업을 하는 공장에서 사용됐지만 곧 백화점과 영화관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영화계에서 ‘여름 블록버스터’라는 제작문화가 생겨난 것은 거의 전적으로 에어컨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정용 에어컨은 1930년대 초에 처음 나타났지만 대중용으로 사용될 정도로 값싼 제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등장했다. 1960년대 초 각 가정에서 앞다퉈 에어컨을 설치하기 시작하자 대도시의 무더운 여름 거리는 실외기가 쏟아내는 열기로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2 에어컨의 야누스적 두 얼굴
최형섭 교수

한국에 에어컨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 역시 이 무렵의 일이었다. 당시 신문을 살펴보면 1960년 ‘전기냉방기(에어콘듸숀아)’ 광고가 눈에 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전기회사의 한국 총대리점인 화신산업에서 직수입해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1962년에는 연세대 의대가 대규모 국제원조 자금을 이용해 신촌의 ‘메디컬 캠퍼스’로 이전하게 됐다는 소식이 게재됐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동양 최대’의 교사(校舍)는 원자 치료실, 라듐 치료실, X선 치료실 등 특수 의료시설과 함께 ‘에어컨디슌’ 장치를 완비했다. 이렇듯 1960년 한국에서 에어컨은 영화관·은행 등 대규모 사무용 공간, 병원 등 특수 시설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고 개인용으로는 극소수 상류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사치품에 머물렀다.

이러한 상황은 1960년대 후반이 되자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8년 한국 최초로 금성사가 미국 제네럴일렉트릭사와 기술제휴로 한국 기후에 알맞게 제습 기능이 강조된 ‘금성에어콘’을 출시했다. 그해 전국에 보급된 에어컨 대수는 1만7,400대에 달했다. 에어컨을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력 생산이 필요했다. 경제개발계획의 추진과 함께 한국전력은 빠른 속도로 전력망을 확충해나갔으나 역부족이었다. 가정용 전기는 제한송전을 반복하는 형편이었다. 마침 1967년과 1968년 닥친 극심한 가뭄으로 수력발전소의 전력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치품인 에어컨이 가장 먼저 철퇴를 맞았다. 결국 1968년 5월 김정렴 상공부 장관은 전력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그해 여름이 끝나는 9월까지 에어컨 사용을 불허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혹독한 바깥 날씨에도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들어주는 에어컨의 확산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70년 한 일간지에서 “최근 우리나라에도 사무실, 극장, 심지어 다방에까지 냉방장치로 ‘에어콘디쇼너’를 다는 붐”이 일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에어컨은 불과 10년 만에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오게 됐다. 그 이후 한국 사회에 보급된 에어컨의 수는 꾸준히 늘어 현재는 가구당 0.8대를 훌쩍 넘어서게 됐다.

에어컨의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그 야누스적 속성 역시 지구화되는 양상을 띠게 됐다. 에어컨 냉매(冷媒)로 널리 이용되던 염화불화탄소(CFC), 즉 프레온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90년대 이후 국제사회는 몬트리올의정서 협약을 통해 프레온가스를 단계적으로 전면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 한국 역시 1980년대까지 냉장고와 에어컨, 각종 스프레이 제품에 프레온 제품을 사용했으나 앞으로 프레온가스는 물론 ‘친환경’ 냉매로 알려진 수소불화탄소(HFC) 냉매 역시 오는 2024년부터 사용을 규제할 예정이다. 20세기 초에 시작된 에어컨 사용이 급기야 지구적 규모에서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제는 나의 사적(私的) 공간의 편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밖의 공간에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다. /최형섭 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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