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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미래 비추는 4차 혁명…그 뒤편엔 '기술실업 그림자'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12>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노동

  • 권경원 기자
  • 2019-11-01 17:29:39
  • 바이오&ICT
장밋빛 미래 비추는 4차 혁명…그 뒤편엔 '기술실업 그림자'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도요타가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도요타 모터쇼에서 공개한 휴머노이드로봇 ‘T-HR3’./연합뉴스

거대한 기술 변화 기대·두려움 공존

산업혁명 당시 일자리 뺏긴 英숙련공

기계 부수는‘러다이트 운동’으로 저항

미국의 저명한 문화평론가이자 뉴욕대 교수인 닐 포스트먼(1931~2003)은 지난 1998년 3월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학회에서 기조강연을 맡았다. 이날 학회의 주제는 ‘새로운 기술과 인간’이었다. 포스트먼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인간 사회와 어떻게 관련을 맺어왔는지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였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1985년작 ‘죽도록 즐기기’는 텔레비전 기술이 어떻게 공공담론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엔터테인먼트로 만드는지를 지적했다. 그는 이후에도 여러 저작을 통해 모든 사회 문제를 기술적 해결책만으로 대응하려는 경향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했다.

포스트먼이 덴버 학회의 연단에 올랐을 무렵 세계는 세기말적 비관주의가 만연해 있었다. 1980~1990년대 이후 인류의 일상생활에 개인용 컴퓨터가 깊숙이 들어왔고 인터넷이 널리 이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이 되면 세계 각지로 서로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의 연도 앞자리가 바뀌면서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이른바 ‘Y2K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었다. 이렇듯 사람들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Y2K는 기우에 불과했지만 정보기술(IT)의 광범위한 이용이 향후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예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세기말 사람들은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기술적 변화에 큰 기대감을 가지면서도 그것이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포스트먼은 단상에 오른 후 평이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21세기가 제기할 문제들이 오래전부터 우리가 직면하고 있었던 문제들보다 더 놀랍거나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닥쳐올 IT는 과거의 기계기술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살펴본 노학자는 다양한 기술의 저변에 깔려 있는 기본 속성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항상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파우스트가 악마와 했던 거래와 같이 기술은 한편으로 인간에게 새로운 편의를 제공하지만 그 대가로 무언가를 가져간다는 지적이었다. 나아가 이러한 편의와 대가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모든 기술 변화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승자들이 기술 변화의 양면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데 있다.

일견 지극히 당연해 보이기도 한 포스트먼의 지적은 가깝게는 1990년대 컴퓨터 및 인터넷 기술의 도래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 후 우리는 비슷한 우려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에는 초고속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물인터넷(IoT),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할 위력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인공지능(AI),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기반이 되는 빅데이터가 그 대상이다. 많은 사람이 이번 기술 변화의 물결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렀다. 20년 전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은 거대한 물결로 우리를 덮쳐올 것으로 그려졌다. 특히 진화를 거듭하는 AI에 바탕을 둔 자동화 기술은 인간 노동이 차지하는 위치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밋빛 미래 비추는 4차 혁명…그 뒤편엔 '기술실업 그림자'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산업혁명 시대에 기계장치의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숙련공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묘사한 그림.

AI·빅데이터 등 첨단기술 확산될수록

직업 양극화 심해지고 소수 인재 편중

‘샌드위치 신세’ 노동자 외면말아야

하지만 포스트먼이 예상했듯이 이 문제들은 과거의 것들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산업화 이후의 테크놀로지가 대개 기계장치를 이용해 인간이 하던 일을 대신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기술실업’ 문제는 테크놀로지 개념 자체에 내재돼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잘 알려져 있듯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후 영국에서는 새로운 기계장치의 도입으로 직업을 잃게 된 숙련공들이 이에 저항하며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나타났다. 공장에 많은 자본을 투자한 공장주들은 정부에 보호를 요청했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영국 정부는 군대를 투입해 폭력 행위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적어도 20여명의 러다이트들이 사형을 당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호주 식민지로 강제이주 명령을 받기도 했다. 이후 19~20세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등장할 때마다 그로 인한 기술실업은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현재 우리는 200년 전의 러다이트들을 고리타분한 반(反)기술주의자 정도로 여긴다. 기술발달로 인한 생산성 증대와 그에 따른 경제적 기회의 확대를 이해할 폭넓은 시야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두 세기 동안 각종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인간의 생산력은 경이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증가했다. 그에 따라 사치품이 대량생산을 거쳐 대중화되고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새로운 물건이 등장해 인간의 편의를 증대시켰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서사다.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수많은 집단이 기술실업의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한 생각은 대개 장기적인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렇게 보면 기술의 발전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절대선(善)에 가깝다. 기술실업에 휩쓸린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일부 사회집단이 단기적으로 감수해야 할 피해가 된다.

최근의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변화의 조짐들은 이러한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몇 해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지켜본 사람들은 바둑 세계의 최고수를 이길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등장했다면 내가 하는 일 정도도 자동화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과거에는 기술실업이 일부 사회집단이 감수해야만 할 피해였다면 앞으로는 그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물결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인식이다.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래 노동 태스크포스’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우려에는 근거가 없지 않다. 1980년 이후 지금까지 약 40년 동안 직업이 양극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즉 고학력·고임금 노동자와 저학력·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증가한 반면 중간 정도의 숙련도에 해당하는 직업은 줄어들었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은 아직 고숙련 노동을 대체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고 최저임금에 가까운 저숙련 노동을 대체하기에는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가 전방위적으로 지속된다면 미래의 노동은 과거의 기술실업과는 다른 독특함을 가지게 될 것이다.

최첨단 기술이 야기할지도 모르는 사회적 파국을 방지하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20년 전에 포스트먼은 컴퓨터 기술에 대해 열광적인 언설을 퍼뜨리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을 하는가. 당신은 어떤 이해관계를 대변하는가. 당신은 누구에게 권력을 주기를 바라며 누구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 하는가.”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이라는 장밋빛 약속을 남발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며칠 전 발표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대정부 권고안을 읽어 보자. 권고안의 ‘기본원칙’은 정부 혁신 정책의 최우선에 인재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재란 ‘평범한 엔지니어보다 수 배, 수십 배의 성과를 내는 최고의 소프트웨어(SW)엔지니어’이자 ‘기업가 정신을 갖춘 소수의 창업자’이다. MIT 연구진이 말하는 고학력·고임금 노동자를 정부 정책의 최우선에 둬야 한다는 권고다. 그렇다면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간 정도 숙련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누가 대변하는가.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의 임무가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수렴해 공정하게 대변하는 것이라면 이번 권고안은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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