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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달러의 기원' 요아힘슈탈러

1520년 합법적 은화 주조

[오늘의 경제소사] '달러의 기원' 요아힘슈탈러

1520년 1월15일 보헤미아 왕국 야히모프. 오늘날 체코공화국 북부인 이곳의 영주 슐리크 백작이 국왕에게 은화 주조권을 따냈다. 산자락인 요아힘슈탈에서 거대한 은 광산이 발견(1516년)된 지 4년, 남몰래 은화를 만든 지 2년 만이다. 슐리크 백작의 은화는 곧 온 유럽에 퍼졌다. 연간 200~300톤씩 채굴되는 은으로 순도 높은 은화를 찍어낸 덕분이다. 인구 3,000명가량의 산동네였던 야히모프는 1만5,000여 광부들이 900개 광산에서 은을 캐내는 부자 도시로 변했다. 슐리크 백작은 유럽 최고 부자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은 광산을 신의 축복으로 여겼다. 은화 주조 시작과 함께 교황은 요아힘슈탈 전체에 세례를 베풀었다. 슐리크의 은화는 곧 요아힘슈탈러 그로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요아힘 골짜기에서 나온 돈’이라는 뜻으로 이후 ‘탈러 그로셴’ 또는 ‘요아힘슈탈러’라는 간략화 과정을 거쳐 ‘탈러(Thaler)’로 바뀌었다. 요아힘슈탈의 은 채굴은 점점 줄어 1631년에는 838㎏으로 쪼그라들었다. 은화 주조도 1671년 종지부를 찍었으나 ‘탈러’라는 이름은 거의 전 세계에 퍼졌다. 스페인제국에 의해서다.

금에만 관심이 컸을 뿐 은의 가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스페인은 1545년 안데스산 꼭대기 포토시에서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은 광산을 발견한 후부터 전 세계의 은화 공급을 도맡았다. 탈러는 은화뿐 아니라 돈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요아힘슈탈에서 탈러가 주조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탈러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돈의 종류만 약 9,000여종. 국가별로 톨라르(체코), 탈레르(러시아), 달러르(네덜란드), 탈레로(스페인), 달러(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라고 불린 돈의 이름이 모두 탈러에서 나왔다. 영어로 이들 돈의 이름은 한 가지로 표시된다. ‘달러(Dollar)!’

반영 감정에 따라 통화 단위를 아메리칸 파운드가 아니라 ‘달러’로 정한 미국에 의해 ‘현대판 탈러’는 세계 기축통화로 굳어졌다. 달러라는 이름은 남겼지만 요아힘슈탈도,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에서 ‘포토시만큼 부유한(as rich as Potosi)’이라고 표현했던 포토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힌다. 자원은 과연 하늘의 축복일까. 남태평양의 나우루공화국은 인광석(바닷새의 똥 누적물) 덕분에 1981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7,000달러(당시 한국은 1,088달러, 일본 9,834달러)로 솟았으나 자원 고갈로 호주에 기대 연명하는 신세다. 하늘의 선물은 오래가지 못한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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