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시세보기

서울경제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

국제경제·마켓
[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57> 제국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감시자로…中의 홍콩 반환협정 무시에 반발하는 英

■홍콩보안법에 영국이 폭발한 이유

지난 12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진행된 홍콩보안법 반대 시위 도중 한 시위자가 영국 식민지시절 홍콩국기를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강행에 대한 영국의 반발이 거세다. 무역전쟁 등 미국·중국 간의 갈등에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 영국이 홍콩보안법 문제만큼은 일말의 후퇴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 유엔에서의 중국 비난에 이어 290만명 홍콩 시민을 빼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줄리언 브레이스웨이트 주제네바 영국대표부 대사는 지난 16일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인권이사회에서 “홍콩보안법의 시행은 영국과 중국이 합의한 공동선언에 따른 중국의 국제적 의무와 직접적으로 충돌한다”며 “홍콩에 높은 수준의 자치와 권리, 자유가 유지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까지 나서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시행한다면 홍콩인 290만명에 영국 시민권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전체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EU 지도부는 지난 2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및 리커창 총리와의 화상 정상회의에서 홍콩보안법 강행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 유럽의회도 앞서 19일 중국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EU와 회원국에 검토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도 채택한 상태다.

그동안 일반의 관심은 홍콩보안법 제정·시행과 이에 대한 미국의 보복인 홍콩 특별지위 박탈 여부에 집중돼 있지만 사실 미국은 홍콩의 국제적 지위 문제에서는 ‘제3자’라는 게 외교·법률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별지위라는 것도 홍콩이 중국 제도와 다른 ‘자치’를 하니 중국과는 다른 지위를 주겠다는 법적 문제일 뿐이다. 만약 자치가 없다면 특혜도 없애면 된다. 이는 간단한 논리다.

지난달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보안법’ 초안이 전격 통과됐다. 전광판에 ‘찬성 2,878표, 반대 1표, 기권 6표’라는 몰아주기 결과가 선명하다. /연합뉴스


정작 복잡한 문제는 영국과 관련돼 있다. 영국은 과거 155년 동안 홍콩을 직접 지배한 당사자이자 우여곡절 끝에 중국과 반환 협정을 맺은 당사자다. 중국이 ‘일국양제(한나라 두제도)’를 통해 홍콩에 향후 50년간 자치와 자유를 주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영국은 ‘법적으로는 의무가 없었던’ 반환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중영 공동선언이 가치가 없다는 말로 무시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2일 정례브리핑에서 “중영 공동선언은 중국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선언한 것”이라면서 “이는 영국에 대한 약속이 아니고 국제의무 위반의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영국인들이 폭발할 만한 상황이다. 이는 영국인들이 홍콩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홍콩인들에게 한 최소한의 약속에도 위반된다. 영국에게 홍콩은 단순한 하나의 ‘작은 도시’가 아니라는 의미다. 영국은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들과 영연방을 구성하고 있는데 홍콩에 대한 영국의 태도는 이런 영연방 국가들에게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논리를 확대한다면 홍콩보안법은 영국에게 영연방이 붕괴하느냐, 아니냐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확대될 이슈인 셈이다. 외교·통상 전문가 대부분은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은 어느 정도 준비했을 것으로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보안법을 추진했다. 베이징의 한 무역 관계자는 “홍콩보안법을 이유로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것에 걸린 미국의 손해가 중국의 손해보다 클 테니 이를 무작정 단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중국 당국에 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이 영국의 대응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는 추측이 많다. 결국 독재 체제의 문제점이 여기서 나온다. 지난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취임 이후 대외관계에서 영국이 문제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보통 독재 체제에서는 최고 수뇌가 관심을 갖지 않는 문제는 아래 사람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영국과 홍콩과 관계는 비극으로 시작됐다. 마약의 일종인 아편을 팔던 자국민을 돕기 위해 영국은 중국(당시 청나라)과 전쟁을 시작한다. 아편전쟁은 역사상 최악의 부도덕하고 불명예스러운 제국주의 전쟁으로 기록됐다. 아편전쟁에서 이긴 영국은 1842년 난징조약을 체결했는 데 이때 홍콩을 할양받았다. 물론 당시 넘겨받은 영토는 지금의 홍콩섬에 한정됐다. 당시 홍콩이라 불린 섬은 몇몇 어민만 살던, 중국 정부로서는 아주 먼 오지에 있는 쓸모없는 ‘점’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국은 홍콩을 아시아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로 판단했다.

1841년 아편전쟁에서 중국 해군이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고 격파되는 모습을 그린 기록화 /서울경제DB


‘난징조약(중국어판)’에는 홍콩에 대해 이런 규정이 있다. “지금 대황제(청 도광제)는 홍콩이라는 한 섬을 대영국 군주(빅토리아 여왕)에서 급여(할양)한다. 이후에도 영국 왕위를 세습하는 자가 영원히 이를 보유하고 편의에 따라 법규를 세워 다스리게 한다.” 즉 홍콩은 영국 국왕의 소유가 됐다.

홍콩섬이 지정학적 위치에서 최적이기는 하지만 지역 자체는 좁았다. 영국인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주민들의 대규모 이주와 시설들의 건설로 점차 공간이 부족해졌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영국은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키고 1860년 베이징조약을 통해 홍콩섬의 맞은 편 구룡반도도 추가 할양을 받는다. 영국의 홍콩 영토는 더 늘어났다.

물론 그렇게 해도 홍콩은 좁았을 것이다. 홍콩 식민지의 가장 늦은 확장 노력은 1898년이다. 신계 지역 등 지금 홍콩의 대부분의 지역이 영국으로 넘어가는 데 문제는 이때의 방식이 할양이 아니라 99년 조차였다는 것이다. 조차는 빌린다는 의미다.

19세기 말에는 제국주의 시대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강압에 의한 무조건적인 영토 확장이 쉽지 않게 됐다. 당시 독일이 자오저우만(칭다오 인근), 프랑스는 광저우만, 러시아는 다롄 등을 조차하는데 그친 시절이었다. 그런데 99년 조차 조항이 결국 홍콩의 중국 반환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100여년 동안 영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반(半)식민지로 신음한 중국이었지만 이들과의 관계는 1937년 일본과의 중일전쟁을 계기로 크게 바뀐다. 중국을 아예 완전 식민지로 삼으려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국도 일본과 싸우는 중국을 지원했다.

이는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중국 국내의 정세에도 상관없이 유지됐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쫓고 대륙을 차지한 공산당 정부도 홍콩까지 ‘회복’하지는 못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란 신생 국가가 영국 등 서방 열강들을 적으로 돌리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단 중국 대륙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영국도 이에 화답하며 1950년 서방국가 중에서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했다.

문제는 홍콩내 신계의 99년 조차 기간이 만료된다는 것이었다. 홍콩섬과 구룡반도 등은 청나라에게서 양도받은 ‘영국 영토’지만 구룡반도 외 신계 등 나머지 대륙 부분은 빌린 지역이었다. 어쨌든 이들 조차 지역은 1997년이면 되돌려 줘야 한다는 의미다.

영국은 딜레마에 처했다. 국제법적으로는 신계를 돌려주고 홍콩섬과 구룡반도만 지키면 된다. 하지만 지도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이들 좁은 지역만으로 홍콩이라는 도시가 생존하는 것은 무리였다. 한술 더 떠 중화인민공화국은 과거 청나라가 영국과 체결한 모든 불평등조약은 무효라고 이미 선언한 상태였다. 홍콩 전체를 내놓으라는 요구다.

물론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중국의 이중적인 태도다. 과거 청나라는 자신이 제국주의 국가 입장에서 이웃 조선에 중조상민수륙무역장정 등 수많은 불평등조약을 강요했는데 현대에 들어와서 중화민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이나 누구도 이를 무효라고 한 적은 없다. 중국도 국제조약을 자신의 편의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중국과 영국은 기나긴 협상에 들어갔다. 군사력에서도 열세일 뿐만 아니라 지금에 와서 다시 제국주의 시대의 해외 영토 문제로 전쟁을 벌일 수 없었던 영국과, 이른바 개혁개방을 통해 안정된 외교관계와 해외 자본의 유치가 절실했던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신계의 조차 기한이 끝나는 1997년에 영국이 영구 할양지인 홍콩섬 등을 포함해 홍콩 전 지역을 아예 반환하되 중국은 홍콩에 대해 향후 50년간의 ‘고도 자치’를 허용한다는 안이다. 이른바 ‘일국양제’를 기본으로 1984년에 발표된 중영 공동선언이다. 그러면 50년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가 논란이었는데 물론 이는 당시 사람들의 상상 밖의 먼 미래에 진행될 이야기였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중국 자체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공산당 일당 독재가 무너지고 대만처럼 다당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고 한다.

1997년 7월1일 0시 무렵 홍콩의 반환식이 진행중이다. 이날을 기해 155년간의 영국 통치가 마감되고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연합뉴스


어쨌든 영국은 영국대로 법적으로 넘겨줄 의무가 없었던 홍콩섬과 구룡반도까지 ‘사회주의 체제’ 중국에 넘겨준 대가로 확보한 권리가 바로 홍콩의 자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후견권이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만약 중국이 홍콩의 기존 체제를 침해하는 지 감시하거나 간섭할 권리를 다른 나라가 갖고 있다면 이는 당연히 영국이라는 인식이다. 중국이 약속한 일국양제는 여전히 27년이나 남았다.

이런 배경 아래 지난 5월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전격 통과시켰다. 곧바로 영국 내에서 여야 할 것 없이 홍콩 시민에 대한 법적·도덕적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단순히 이는 영국이 홍콩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를 넘어서 다른 영연방 국가에 대한 약속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영국이 주요 구성원인 유럽까지 반발이 커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확보했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독립시키거나 원래 국가에 반환했던 경험이 있다. 과거 제국주의 통치에 고통받던 식민지 주민에 대한 부채의식까지 더해지면 이것이 홍콩의 자치 침해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인들이 민주화 시위에서 미국 국기와 함께 영국 국기도 들고 나오는 것은 그만큼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영국의 지원을 기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제국주의 세력이 현재 민주주의의 지지자가 된 셈이다.

한편 중국 본토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불만이 많다. 시위에 동조하는 홍콩인들은 분리독립을 노리는 배신자이고 영국은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옛식민주의 세력이라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관영매체 뿐만 아니라 일반 중국인들의 대체적인 인식이기도 하다.

다만 이는 한 번도 보편적인 자유와 민주주의를 체험하지 못한 중국 라오바이싱의 편견임에 분명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오는 9월 홍콩의 입법회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의 승리를 막기 위해 중국이 8월 이전에 홍콩보안법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요 뉴스
2020.07.05 17:21:09시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