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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화가의 조수 '명작의 조연'이 되다

■예술가, 그 빛과 그림자- 예술가의 공방

-이연식 미술사가

미켈란젤로는 혼자 작품 완성하지만

루벤스·워홀 등은 조수 둔 작업장 운영

분업시스템으로 공장처럼 찍어내기도

타인 손 빌려 창작의 세계 넓혀나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에 그린 천장화(1508-12)와 제단화(1535-41)




예술가에 대한 중요한 환상 가운데 하나는 예술가가 작품 전체를 온전히 혼자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미켈란젤로는 그런 환상에 걸맞은 예술가였다.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은 천장화나 벽화를 그릴 때 공방 시스템으로 작업했다. 넓은 벽에서 덜 중요한 부분, 단순한 작업이 필요한 부분은 조수에게 맡기고 자신은 중요한 부분, 까다로운 부분을 맡았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드넓은 천장에 비계를 오르내리며 고개를 뒤로 젖혀 4년 동안 오로지 혼자 힘으로 그림을 그려냈다.

루벤스, <성모자에게 경배하는 성인들>을 위한 소형 유화 스케치, 1628년


반면 루벤스는 공방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루벤스는 작은 화면에 그림을 그리고 물감으로 적당히 색을 칠해 조수에게 넘겼다. 조수들은 이것을 확대해 커다란 화면에 옮겨 그렸다. 조수끼리도 분업을 했다. 동물을 잘 그리는 이는 동물을, 나무를 잘 그리는 이는 나무를 그렸다. 루벤스는 전체적으로 손을 봐 완성했다. 이런 식으로 루벤스는 평생 2,000~3,000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오늘날 유럽 미술관 곳곳에 루벤스의 작품들이 잔뜩 걸려 그림 하나하나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한편 루벤스의 조수로 일하다 독립해 활동한 이들도 적지 않다. 야코프 요르단스를 비롯한 몇몇 화가는 루벤스와 화풍이 흡사해 종종 혼동을 일으킨다.

앤디 워홀은 1964년 스튜디오를 차려 ‘팩토리’라 불렀다. 말 그대로 공장과 같이 예술품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었다. 워홀은 자신의 작업을 판화로 찍어 유통했다. 색을 칠하는 작업도 조수에게 맡겼고 인터뷰에서도 이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을 구입하는 입장에서는 예술가가 직접 만들었다는 점이 중요했기에 물의를 빚었다. 워홀은 재빨리 말을 거둬들였다. 고용주로서 워홀은 매우 인색했다. 그의 작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지만 조수들은 푼돈만 받고 일했다. 스튜디오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팩토리가 생겼다. 첫 팩토리는 ‘실버 팩토리’라고 불렸는데, 내부를 알루미늄 포일로 감쌌기 때문이다. 팩토리는 새롭고 멋진 것, 독특한 것을 찾는 예술가와 연예인이 모이는 교류의 공간이 됐다.

1980년대부터 명성을 얻었던 제프 쿤스도 뉴욕에 거대한 스튜디오를 꾸렸다. 초기에는 조수가 30명이었는데 나중에는 100명 안팎까지 늘었다. 쿤스는 과거에 렘브란트와 루벤스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쿤스에게는 대가의 아우라가 없다. 쿤스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전체를 감독했다. 워홀의 팩토리가 색다른 문화적 교류와 에너지로 넘치는 공간이었던 것과 달리 쿤스의 스튜디오는 효율적으로 관리된 작업장이다.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무라카미 다카시도 조수들을 고용해 작품을 만든다. 처음에는 ‘히로폰 팩토리’라고 명명했다가 유한회사 ‘가이카이키키’로 개명했다. 도쿄에 본사가 있고 사이타마·교토·홋카이도·뉴욕에 스튜디오와 오피스를 두고 조형 예술품과 영상 작품 창작, 예술가 양성과 매니지먼트까지 진행한다. 무라카미는 작품 구석에 조수들의 이름을 모두 넣도록 한다. 마치 영화가 끝난 다음에 올라가는 타이틀 롤처럼.

애초에 예술가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과거의 화가들은 안료를 직접 빻고 개어서 화면에 발랐지만 튜브 물감이 등장한 뒤로는 누구나 물감을 짜서 쓸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화가들은 안료를 전혀 다룰 줄 모른다. 하지만 안료를 직접 다루던 시절이라고 더 나았던 것은 아니다. 몇몇 안료는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비쌌고, 내구성도 떨어졌다. 전통적으로 파란색은 값비싼 색이라 조금씩 아껴 발랐지만 18세기에 화학안료인 프러시안블루가 등장하면서 마음껏 칠할 수 있었다. 캔버스를 비롯한 화면도 그렇다. 오늘날 유화는 당연히 캔버스에 그리는 것이라 여기지만 베네치아 사람들이 돛에 쓰는 천을 당겨서 그림의 바탕으로 삼을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나무 패널에 그림을 그렸다. 이처럼 물적 조건이 예술을 규정한다. 육체적 조건도 예술을 규정한다. 나이가 들수록 큰 화면이나 큰 돌덩어리를 다루기 어려워진다. 손이 떨리면 정교한 묘사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난점과 모순을 대중이 훤히 알도록 해서는 안 된다.

예술가가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예술가를 창조주와 동일시하는 관념에서 온 것이다. 조물주가 세상을 만들었다면 세상 구석구석까지 그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전능한 조물주가 외주를 줘서 산에 만년설을 얹고 강줄기를 꺾어놓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창조주로서의 예술가라는 다분히 종교적인 시각은 예술가의 위상을 높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옥죄기도 한다.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려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조수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삼아 천수관음처럼 뻗어 나가는 것이다.

이연식 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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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독자부 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기자는 사회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진실을 향하고 거짓을 고발하는 게 기자의 사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쓰고 이를 책임지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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