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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문턱에서 뿌리 생각한 백남준...유년기 향수를 드로잉에 담았다

■20일 백남준 탄생 88주년

동창 수필가 이경희씨 '백남준의 드로잉편지' 출간

백남준이 병상서 보낸 73점의 콜라주 드로잉 엮어

한남동 디뮤지엄은 백남준의 '즐거운 인디언' 공개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 관련 온라인강의 진행도

대림문화재단이 소장한 백남준의 ‘인디언’이 오는 8월말까지 한시적으로 디뮤지엄의 전시장에서 공개된다. /사진제공=대림미술관




“직업이 예술가인데 쉬고 있으면 어떡해. 구상은 머리로 하고 작업은 오른팔로 할 수 있는데, 머리도 정상이고 오른팔도 정상이니까 할 수 있었지. 내가 처음으로 구상한 작품이니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공공미술관에서 한번 전시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중략)…경희에게 보낸 작품들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첫 번째로 한 작업이야. 그것들은 지금껏 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고, 앞으로도 그런 작품은 다시 하지 않을 거야.” <‘백남준의 드로잉 편지’(이경희 지음, 태학사·도서출판 광장 펴냄) 중에서>

백남준(오른쪽)과 ‘애국유치원’을 같이 다닌 첫사랑 이경희(왼쪽) 수필가가 1996년 가을에 받은 백남준의 드로잉 73점으로 ‘백남준의 드로잉편지’를 출간했다. /사진출처=태학사·도서출판광장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독일에서 공부한 후 미국 뉴욕을 거점으로 세계적 활동을 이어가던 백남준(1932~2006)은 유럽에서 시작해 한국으로까지 이어진 대규모 회고전과 베니스비엔날레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 수상까지 ‘생의 절정’을 달리다 1996년 4월 뇌졸중으로 돌연 쓰러졌다. 끝인 줄만 알았으나 갖가지 약물과 재활치료 끝에 조금씩 손발을 움직이게 됐고 그해 9월쯤에는 휠체어로 거동하거나 말로 지시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이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개인전과 휘황찬란한 레이저아트 신작으로 백남준은 ‘거장의 귀환’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회복기의 백남준은 어떤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어떤 작품으로 펼쳐냈을까? 백남준이 병석에서 작업해 1996년 가을 우편으로 유치원 동창생인 수필가 이경희(88) 씨에게 보낸 73점의 ‘콜라주 드로잉’이 그 실마리다. 7월20일 백남준 탄생 88주년을 앞두고 이경희 씨와 ‘백기사(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의 공동대표인 건축가 김원이 합심해 ‘백남준의 드로잉 편지’라는 새 책을 최근 출간했다. 73점의 드로잉은 종이에 사진을 붙인 후 그 위에 백남준 특유의 낙서 같은 선과 글씨를 더한 것이다. 지난 2010년 포항시립미술관 개관 기념전 때 최초로 공개된 적 있을 뿐 이후로 빛을 본 적 없는 작품들이다.

백남준이 뇌졸중에서 깨어난 1996년 가을에 유치원 동창 이경희 씨에게 보낸 73점의 드로잉 중 일부. /사진출처=태학사·도서출판광장


백남준이 뇌졸중에서 깨어난 1996년 가을에 유치원 동창 이경희 씨에게 보낸 73점의 드로잉 중 일부. 김소월의 시, 수학기호 제곱근 등이 작가의 뿌리에 대한 고뇌를 짐작하게 한다. /사진출처=태학사·도서출판광장


난해한 작품들에는 제곱근을 뜻하는 수학기호 ‘루트(√)’가 자주 등장한다.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원을 지낸 김남수 평론가는 “이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 이미지를 ‘백남준의 루트 기억’이라 부를 정도인데, 백남준은 제곱해 유리수가 되는 제곱근의 수학적 조건에 주목해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이라는 명제를 밝힌 바 있다”고 설명한다. 김 평론가는 73장의 작품을 제곱근이 그려진 이미지를 비롯해 ‘섹슈얼 힐링(성적 자극을 이용한 치료법)’과 관련 있는 비디오 설치 앞의 누드 이미지와 백남준의 할아버지 백윤수의 1921년 장례식 이미지, 1963년 첫 개인전에 설치됐던 실험TV 속의 이미지, 작가의 젊은 날의 사진 등으로 크게 나눠 분석했다. 그는 “이 작품군에서 가장 중요한 감흥은 유년기로 되돌아가고 싶은 향수”라며 이는 ‘자, 밥 먹자’ ‘기동차를 타고 뚝섬에 원족(소풍의 옛말)가자’ ‘칙칙폭폭 기차가 떠난다’ 등 작품 속 문구로 나타난다고 짚었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산유화’를 비롯해 김기림, 정지용 등의 시 구절도 어눌한 글씨로 등장한다. 김 평론가는 “평생 서구 미술계의 한복판에서 달려온 백남준이 무의식 속에 이러한 시적 언어와 그 언어가 돌아갈 거처를 모색했음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라며 “백남준의 강한 뿌리 의식은 생사의 고비에서 회복했을 때 돌아가야 하는 존재의 집을 떠올린 것”이라고 밝혔다.

백남준이 뇌졸중에서 깨어난 1996년 가을에 유치원 동창 이경희 씨에게 보낸 73점의 드로잉 중 일부. /사진출처=태학사·도서출판광장




책의 출간 외에도 백남준의 생일에 즈음해 미술계 안팎에선 의미있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용산구 한남동 디뮤지엄은 대림문화재단이 소장한 백남준의 1995년작 ‘즐거운 인디언’을 8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공개한다. 디뮤지엄에서 한창인 ‘사운드뮤지엄(Soundmuseum):너의 감정과 기억’이 소리나 음악까지 감성을 확장한 공감각적 전시라는 점에서 백남준의 작품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서구에 의해 타자화된 인디언 신화를 상징한 작품은 3층에 설치돼 오후 2~5시에만 작동한다.

용인에 위치한 경기문화재단의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 전시 연구회’라는 강좌프로그램을 기획해 지난 18일을 시작으로 8월 29일까지 7주 동안 진행한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매년 준비했던 행사들을 축소했고 강의도 수강생을 40명으로 제한한 대신 웹 생방송을 진행한다.

한편 백남준이 남긴 최대규모의 작품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원형홀의 ‘다다익선’은 오는 2022년 복원을 목표로 현재 해체 수리 중이다. 건축가 김원이 설계를 맡아, 개천절을 뜻하는 1,003개의 모니터로 이뤄져 1988년에 완성된 높이 18.5m의 작품인데 모니터 노후화를 이유로 지난 2018년 2월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지난해 10월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시작한 대규모 백남준 회고전은 네덜란드의 스테델릭시립미술관으로 옮겨 지난 3월 3일 개막했다. 코로나19로 개막식이 취소됐지만 재개관 후 거리두기를 유지한 상태에서 관람이 허용됐다. 8월 23일까지 열린 후 전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싱가포르 등지로 이어진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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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친절한 금자씨는 예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날 세운 풍자와 노골적인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위작 논란도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착한미술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으로 쏘다니며 팔자 좋은 기자. 미술, 문화재 전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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