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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기획·연재
'Be the Reds' 낳은 서울 장위동...뉴타운 이슈만 '15년째' 언제쯤 재개발될까? [역지사지 EP.3]

옛 부촌 형성했던 서울 장위동 고급주택단지 가봤더니

GTX-C, 동북선 개발과 함께 다시 재개발 의지 타올라

역사 덕후의 부동산 버킷리스트 제3화, 서울 장위동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첫 문장입니다. 개발로 인해 터전을 잃어버린 내용을 담고 있는 60년대 중반의 시죠. 그런데 성북동에 가면 아직도 이 시의 배경이 될 법한 모습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구멍 뚫린 담벼락 사이로 쓰레기가 버려져 있고 빈집과 함께 신축빌라들이 곳곳에 비집고 들어서 있습니다. 개발을 앞두고 있는 듯 하지만 어쩐지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이 곳. 서울 성북구 장위동의 현재 모습입니다.

한 때 부촌을 형성했지만 개발권에 들지 못하며 오랜 세월 옛 영광을 잃어버린 장위동의 어제와 오늘을 지금부터 한 번 살펴보시죠.





■한량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서울의 외곽

원래 장위동 지역은 웃말(위지역), 아래말(아래지역), 명덕굴, 간대마을(가운데), 활량리(한량리), 이 5개의 자연 촌락이 합쳐진 지역이라고 합니다. 활량리는 한량리의 와전된 음인데 조선시대 한량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데서 붙여진 거라고 하죠. 과거 ‘한량’이라 함은 지금처럼 직업도 없고 한심한 사람을 표현하는 건 아니었어요. ‘용비어천가’에 ‘한량’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평소 유학을 다녀왔거나 무예를 배웠지만 직업이 없어 한가롭게 사는 사람을 뜻했다고 해요. 먹고 살기 어려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던 시절의 한량이란...비교적 부유한 계층이었음이 짐작되죠?

한량들 뿐 아니라 장위는 조선시대부터 줄곧 농민들이 살았습니다. 별다른 특산물 없이 누구나 다 하는 벼농사, 조, 수수, 고추 등 작물이 재배됐어요. 특별한 특징이 없다보니 자연스레 자연물로 마을 이름을 정하게 됐고, 주변 ‘장위산’의 이름을 따 ‘장위동’이 됐다고 하죠.

또 다른 설도 있어요. 고려의 명신들이 이 마을에 살아서 ‘높은 지위’란 뜻의 ‘장위’가 됐다고도 하고, 조선 말 이조판서를 지낸 윤용구가 이곳에 살아 그의 호(장위산인)를 따 장위가 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근데 아무리 행정안전부 장관 격인 이조판서가 여기 살았다는 이유로 지역명을 만드냐고요? 그게 다가 아니었겠죠. 윤용구는 사실 이 지역의 유지, 당시 장위동 대부분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윤용구는 조선23대 순조의 막내 딸 ‘덕온공주’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지나갈 때 모두 말에서 내려 ‘하마(말에서 내림)’하는 장면이 연출됐다고 합니다. 죄인을 잡을 때도 윤판서 허락없이는 체포할 수 없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장위동 ‘실세’였네요.

장위동은 조선 초 한성부에 속했다가 후기에는 동부 인창방 장위리계로, 일제강점기인 1911년 경성부 인창면에 편입됐습니다. 경춘선(1939.7)과 중앙선(1939.4) 개통을 기점으로 주택 수요가 급증하며 해방 후엔 서울특별시에 ‘성북구 장위동’이란 이름으로 편입하게 되죠.

■고급 부촌이 있었던 ‘장위’…강남 개발과 함께 잃어버린 명성





철도 개발과 함께 주택 수요가 늘어나면서 서울시는 장위동에도 ‘부흥주택’을 건설했습니다. 부흥주택 기억하시죠? ‘청량리’ 편에서도 홍릉 왼쪽에 부흥주택촌이 넓게 늘어서있다 말했었는데요. ‘부흥주택’은 6.25 전쟁 후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에 걸쳐 육군 공병대와 정부가 주도한 주택촌이에요. 지금의 LH 공공사업이라고 볼 수 있죠. 지금도 장위에 가면 장위 초등학교 남동측 부분에 부흥주택의 흔적을 볼 수 있어요.

현 삼성생명의 모체인 동방생명보험도 1960년대 장위동에 주택촌을 만들었어요. 당시 땅을 갖고 있던 윤용구 집안 직계 후손에게 장위동 구릉지 10만여 평을 매수해 택지 사업에 뛰어들었죠. 그런데 보험회사가 왠 주택개발사업을 하냐고요?

1960년대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경제개발 드라이브가 추진되던 때였어요.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정말 많은 사업들이 시행됐죠. 당시 서울시의 시정 구호가 ‘돌격 건설’, ‘싸우면서 건설하는 해’로 불렸을 정도였다고 해요. 세운상가, 낙원상가, 강변도로와 강변 아파트 단지, 수많은 육교들이 이때 건설됐습니다. 당시 서울시장인 김현옥 시장의 별명이 ‘불도저’ 였는데 이때 정부에서는 주택난 해소를 위해 서민용 택지 조성을 조건으로 보험업계에 대규모 부동산 투자를 허용했습니다. 동방생명보험은 당시 계약자들이 납입하는 보험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자산운용을 고민하던 때였고,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서울 외곽 지역에 대규모 부동산 투자를 시도한 거죠. 분양은 성공적으로 이뤄져 71년까지 택지 90%가 분양됐습니다. 이 일대의 주택가는 한 때 장위동 일대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주택가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군 장성, 고위 공무원, 유명 연예인들 다수가 장위동 주택가에 둥지를 틀면서 장위동 동방주택 일대에 단독주택은 부를 상징하기도 했죠.



하지만 강남 개발과 함께 이곳에 살던 부자들이 대부분 이사를 가며 장위동 부촌은 조금씩 낙후되기 시작했습니다. 장위동의 지형 자체가 워낙 높고 지하철이 들어갈 수 없어 개발이 어려웠던게 이유인데요. 고급 주택이 조금씩 헐리면서 이곳은 가난한 빌라촌으로 바뀌었고 옛 영광을 잃어버린 채 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장위동 230-49’ 주택인데요. 이 주택은 1970년대 건축됐지만 노후화가 진행되며 1986년 건축가 김중업과 김수근이 리모델링했습니다. 현재 이 주택은 1980년대 한국의 중산층 주택이라는 건축사적 의의를 인정받아 2017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장위동 중심부에 위치한 옛 실세의 한옥 ‘진흥선원’



장위동 주택촌 한복판에는 조선시대 때 지어진 한옥이 한 채 있습니다. 유독 허물어지지 않고 잘 보존된 이 기와집은 과거 윤용구와 아버지 윤의선이 살았던 곳인데요. 장위의 유지였던 윤용구네 집이라니 아무래도 허물 수가 없었겠죠? 문에 을축년에 지었다는 기록이 전해져 이 한옥은 1865년 고종 2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돌곶이로 34길 4-11에 위치한 이곳은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됐습니다. 시간이 지나 김진흥 이란 인물에게 팔리면서 소유주 이름을 따 ‘김진흥 가옥’으로 불려오다가, 1998년 김진흥의 부인이 이곳을 불교재단에 기증하면서 현재는 ‘진흥선원’이란 이름의 절로 바뀌었습니다. 안에는 넒은 마당과 함께 사랑채, 뜰 등 고급 한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윤용구는 일제가 남작 작위를 수여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두문불출 세사를 멀리하며 이곳에서 글과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지역의 실세이자 지조있던 옛 문신의 터전인 만큼 그 아우라가 남다른 모습이죠?

■동대문 패션산업의 배후 클러스터 역할을 했던 ‘장위 봉제단지’





1970~80년대 부촌이었던 장위동은 ‘봉제단지’도 함께 조성되며 많은 회사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1970년대 봉제업체와 자수업체 등 의류봉제업체들이 장위에 속속 들어서며 많은 상가들도 준공됐습니다. 8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월드컵 특수를 거치며 이 일대는 굉장한 활기를 띄었었는데요. 대한민국 근간산업인 ‘섬유의류업’이 이곳에서 탄생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와이셔츠, 잠바 등을 위시한 신사복 전문 제조업체인 ‘내외패션’과 90년대 말 연매출 44억 규모로 성장했던 의류제조 수출업체 ‘사해무역’도 이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인상과 인력 부족, 수요 감소 등으로 봉제 산업 전반이 쇠퇴하면서 기업들이 문을 닫고 봉제 산업 이후 새로운 대체 산업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주택과 함께 산업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서울의 재개발 중심지에서 희망 잃은 땅으로…장위, 다시 날 수 있을까?

자연스레 시간과 함께 쇠퇴하던 장위는 ’뉴타운‘ 사업과 함께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부동산 호황이 한창이던 시절 이명박 정부가 추진을 결정하면서부터 인데요. 노후된 주택과 기반시설 정비를 목표로 건설교통부로부터 재정비촉진지구로 최종 선정됐습니다.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지정된 뉴타운 사업이었습니다. 장위동 68번지 일대는 2만6,000여 가구의 아파트를 지어 7만3,000명을 수용하는 미니 신도시 개발로 계획됐죠. 이런 청사진 앞에서 장위동은 15개 구역으로 나누어 전면 개발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았습니다. 하지만 2008년 말 전국적으로 예상치못한 미국 발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고 장위 뉴타운 사업도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집값이 내려가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부담금이 늘어나면서 “과연 이 사업이 수익성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의견이 갈리기 시작해 주민간 대립이 커졌죠. 결국 주민들의 찬반 갈등이 계속되오다 2014년 11월 일몰제로 재정비촉진지구가 해제되면서 뉴타운 계획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재정비 촉진지구 때문에 건축제한이 걸리며 건축물이 급속하게 노후화됐고 2015년 기준 20년 건축물이 89.4%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40년 이상된 건물은 전체의 46.5%에 이르렀다고 하니...주민들의 시름이 이만저만 아니었겠죠. 11년 이상 묶여있던 건축제한이 해제되면서 장위는 곳곳이 공사현장으로 변했습니다. 재개발을 포기하고 들어선 신축빌라와 다시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돼야한다며 버티고 있는 낡은 주택들. 이 둘이 한데 섞여 각종 소음, 도로 파손 등 혼란스런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15개 구역으로 쪼개졌던 장위 지역은 지금도 구역별로 상황이 판이합니다. 북서울꿈의숲과 인접한 1, 2, 5, 7구역은 이미 일반분양이 이뤄져 새 아파트가 들어섰고, 장위 4구역과 인접한 ‘래미안 장위포레카운티’가 33평형 10~11억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새 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3구역은 그동안 10년 넘게 지지부진하다 이제 조금씩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근처 공인중개사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장위3구역은 지분과 절차를 둘러싸고 말이 많았다. 이제는 사업 속도가 4년 뒤엔 이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프리미엄은 2억~3억 정도 형성됐다”고 말했습니다.

돌곶이역과 가까운 4구역은 이주율 100%로 현재 모두 허물어져 착공이 임박했습니다. 자이가 들어서기로 예정된 4구역은 올해 말 분양을 앞두고 있죠. 현재 프리미엄만 4억~5억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다 허물어진 4구역 한 가운데 나홀로 아파트가 홀로 서있단 점인데요. 신축으로 들어온지 15년밖에 안돼서 개발구역에 빠져 이곳만 홀로 남아있게 된 것이죠. 지금은 5~6억원대로 시세가 형성되어 있지만 향후 신축 아파트가 둘러싸게 되면 주변 인프라를 함께 이용하게 될 예정입니다.



8, 9, 11, 15구역은 주민 반발로 재개발 지정이 해제돼 지금은 낡고 허름한 주택촌의 모습입니다. 다시 재개발 진행을 위해 주민 동의를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10구역은 높은 이주율로 철거를 앞두고 있지만 ‘사랑제일교회’ 이주 문제로 진행이 막혀 조합원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중입니다. 이곳은 배상금 500억원대를 주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어 협의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 부촌이었던 13구역은 재개발 구역 해지된 이후 서울시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 수립에 착수해 지금은 ‘골목마다 이야기를 품은 장위마을’ 슬로건으로 마을을 다시 꾸미고 있습니다. 장위동 가꿈주택 골목길, 새롬길 등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골목을 다시 바꾸고 있다고 하죠. 하지만 도시재생 사업에 100억원 이상의 서울시 예산이 투입된 만큼 다시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기엔 아주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장위동은 2021년 착공 예정인 GTX-C 노선이 광운대역에 들어올 예정입니다. 강남 접근성이 높아지지만 지하철역까지 버스를 이용해야한다는 점, 상월곡역, 돌곶이역, 석계역 모두 6호선인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 장위를 관통하는 가장 큰 도로 ‘돌곶이로’가 부분 확장되면서 주요 도로가 왕복 4차선 도로에 불과한 점도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GTX 말고도 왕십리에서 상계역을 잇는 동북선 경전철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요. 이 철도가 개발되면 장위12구역, 2구역은 완전한 역세권이 됩니다.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동북선이 뚫리면 가장 매력적인 곳이 장위12구역이다. 다른 지역은 버스를 이용해야 하지만 12구역은 바로 앞에 역이 생길 뿐 아니라 복합환승센터도 지으려고 한다. 지금은 주민 동의서를 받고 있는 단계지만 재개발되면 가장 호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옛 ‘드림랜드’가 헐리고 ‘북서울 꿈의 숲’이 조성되며 탈바꿈을 기대했지만 15년 전 개발 실패의 쓴 맛에서 아직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장위동.

개발 격차로 다소 혼란스런 모습이지만 청량리·노원 등 서울 동북권 개발과 함께 호재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죠. 어떠신가요, 여러분께 장위는 매력적인 곳인가요?

/정수현, 이종호 기자 차현진 인턴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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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미디어센터 정수현 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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