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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부동산일반
[역지사지]영화 '기생충' 나오던 킹서민 동네의 변신...아현동의 과거를 아시나요? [영상]

수많은 서민들의 친구가 되어줬던 땅, 아현동

7080 전성기를 지나 '마래푸', '공덕자이'로 다시 한 번 날개 단 이곳

아직 끝나지 않은 '아현뉴타운 개발' 어디를 주목해야할까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으면 못 사는 곳”

밤이면 똥 냄새로 잠 못 이루고, 숨 넘어가는 언덕배기를 매일 오르내리며 생활해야했던 곳이 있습니다. 노후하고 불량한 판자집들이 콩나무 시루처럼 들어차며 장화를 신지 않으면 발을 다칠 만큼 도로 사정도 열악했던 동네인데요. 지금이야 젊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마래푸가 있는 곳’, ‘마포를 이끄는 동’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야말로 서민들의 집합소, 서민 중의 서민들이 모여사는 빈촌이었죠.

이번주 역지사지 9번째 지역은 영화 ‘기생충’에 소개될 만큼 가난했던 동네지만 지금은 천지개벽하고 있는 곳, 서울 마포구 아현동입니다.

아현동은 마포구 동북쪽에 위치해 북쪽으로는 서대문구, 동쪽으로는 용산을 끼고 있는 지역입니다. 공덕역, 애오개역, 아현역, 이대역을 끼고 있고 한강과 맞닿아 있어 서울에서 교통으로 손꼽히는 지역입니다.

2014년 완공된 마포래미안푸르지오의 등장으로 지금은 살기 좋은 동네로 변해가고 있지만 과거의 아현동은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안 백성의 사체를 매장하는 곳으로 활용되기도 했고, 거주민의 80%가 일용 노동자와 무직자일 만큼 대단히 가난했던 동네였는데요.

아현동은 1931년 일제에 의해 ‘집단수용지’로 선정될 만큼 빈민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일제는 서울의 도시 미화 사업을 목적으로 서울 곳곳의 빈민들을 집단적으로 강제 이주 시켰는데요. 그 이유는 아현에 원래 빈민이 많이 살고있었을 뿐더러 지리적으로 고개가 높고 통행이 불편한데다 조선 후기부터 묘지터로 많이 쓰였기 때문에 집단수용지로 지정하는데 큰 부담이 없었을 겁니다.

이곳이 묘지터로 사용됐던 이유는 옛날 한성부에서 서소문을 지나 시체를 지나가게 했는데 바로 앞에 있는 언덕인 고개를 지나서 어른과 아이 시체를 묻게 했다고 하죠. 특히 아이들의 무덤이 많이 묻힌 언덕이라 해 ‘애오개’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이 애오개를 한자로 풀면 ‘아현’이 됩니다. 물론 애오개라는 지명은 마포로 넘어가는 고개의 모양이 마치 아기를 업은 엄마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 ‘애고개’로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빈민들은 상당수가 미숙련 육체노동자, 지게꾼, 행상, 넝마주이 등으로 생활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집단수용지’로 지정된 이후 이곳은 공동묘지 터를 폐지하며 자취를 조금씩 감추게 되었습니다.





광복과 6.25 전쟁을 거치며 아현동 일대는 많은 피난민과 이농민이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갈곳 없는 사람들이 아현동으로 몰려온 이유는 이곳의 지리적인 측면이 큰데요. 당시 아현은 마포나루를 끼고 있는데다 전차의 종점인 ‘마포종점’이 위치해 많은 외지 사람들이 오고가는 곳이었습니다. 아현동에는 특히 황해도에서 월남한 이북민들이 많았었는데요. 황해도에서 마포나루를 통하는 월남루트가 있었고, 서민들이 많이 살고 있던 아현동에 자연스레 터를 잡게 된 것이죠. 또 아현동에는 ‘물건이 처음으로 들어온다’는 뜻의 ‘선통물천’이란 지명이 있었는데 이 곳은 아현동을 끼고 있는 기다란 하천으로 많은 피난민과 지방민이 교통과 상업으로 이용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선통물천과 전차의 영향을 받은데다 큰 부담없이 터를 잡을 수 있었던 까닭에 아현동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약 8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에 더 이상 집이 들어설 수 없을 만큼 판잣집이 빽빽하게 들어차며 아현동 일대를 형성했습니다.



면적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니 아현에는 생필품이 많이 필요하게 됐고 가게와 시장들이 들어서게 됐습니다. 지방에 올라온 사람들과 피난민들은 아현시장과 그 주변에서 행상과 같은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서울 시내와 가깝고 사람이 많아 일자리를 구하기 쉽다는 점도 아현동에 계속해서 사람들이 모이게 된 이유였습니다.

많은 인구로 비좁은 삶을 이어가던 아현동 일대는 60년대부터 서울시 도시정비사업으로 대대적인 도로정비사업을 시작합니다. 78년 마포로가 넓혀지고 버스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으며 용마로, 신촌로타리, 공덕동로타리가 생겨났습니다.

또 불량주택재개발지구로 지정되며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 상하수도 건설과 석축공사, 도로 포장 등이 이뤄졌는데요. 개발과 함께 삶의 질이 점차 나아지던 아현동은 시간이 흘러 돈을 번 사람들이 새로운 주택 양식을 만들어가며 판자촌, 단독 다세대 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단지가 뒤섞인 채 살아가게 됩니다.

#7080, 아현동의 전성기

아현동의 개발과 함께 아현동 상업지구는 70~80년대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수많은 인구와 함께 결혼, 이사 등이 잦아지며 웨딩타운, 가구거리가 조성되기도 했는데요. 아현동 웨딩거리는 75년에서 80년대 사이에 지어져 수많은 사람들의 결혼을 책임졌습니다. 90년대에는 약 100곳이 넘는 웨딩 점포가 생기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추후 청담동이 들어서기 전까지 이곳은 웨딩의 ‘메카’였다고 하죠.



또 아현 고가도로를 따라 북아현동, 아현동에 자연스레 가구거리도 생겨났는데요. 서울 가구거리의 원조로 불리는 아현동 가구거리는 저렴한 가격대의 가구를 파는 가구점들이 몰려 신혼부부가 웨딩이 이어 방문하는 최적의 장소로 각광받았습니다. 실제로 시중가보다 10~20% 정도 저렴하며 자체 제작하는 중소기업 제품이 많아 일반가구보다 30% 이상이 싸기도 합니다.

아현동 주택의 밀집으로 번성했던 웨딩, 가구거리는 아현 뉴타운이 추진되고 난 이후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재개발 추진으로 언제 헐릴지 모르는 집에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지 않았고, 결혼이 줄고 집수리가 줄며 설비가게를 포함한 많은 상업적 기능을 점차 잃어갔습니다. 대다수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외지로 옮겨갔으며 지금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소수의 건물들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껴간 '아파트 붐'...주택 천지된 아현동





아현동은 80년대 말 강남개발과 함께 진행된 서울 아파트 붐을 비껴가며 오랜시간 주택촌으로 살아갔습니다. 산 7~8번지가 대표적인데요. 언덕빼기 꼭대기에 있었던 산7번지에는 70년대 호박밭이 있었는데 동네에 불량배가 많아 인근 지역에서 악명을 떨쳤으며 경찰서에 끌려가도 ‘산 7번지’라고 말하면 ‘뺨 한 번 더 맞았다’고 전해집니다. 80년대 말 아파트가 들어설 수 없다고 판단했던 이곳은 주택을 짓기 시작했는데 땅을 파면 해골이 무더기로 나왔다고 하죠. 공동묘지 터에 주택이 들어섰던 이곳은 현재까지 쭉 그 모습을 이어오다 2008년 ‘아현뉴타운’ 개발 공사를 시작하며 대대적으로 철거작업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무려 3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는데 그 이름이 바로 지금의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입니다. ‘아현의 꼭대기’로 불리며 빈촌을 상징하던 산7번지의 대단한 변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아현의 새 바람을 불어넣은 마래푸 덕분에 아현동은 주변 개발도 속도를 내어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과거 산7번지 사람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아포’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아현동 포장마차’ 거리인데요. 아포는 60년대 선통물천으로 불리던 하천 근처에 있었는데 리어카를 끌고 와 술과 음식을 판 것이 아포의 시작이었습니다. 91년에는 상인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나무판자 노점을 만들었고 99년엔 다시 공사해 컨테이너 상점도 생겼습니다. 애오개 언덕 산동네가 다세대주택 사람들로 복닥거릴 때 아포의 불은 밤낮으로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4년 말 포차촌 앞 아파트에 입주하기 시작한 이웃들이 아포의 존재를 미더워하며 아포의 입지는 점차 흔들리게 됩니다. 주민들은 구청을 찾아가 “불법 시설물을 철거하라”는 시위를 벌였는데 당시 주민들이 구청을 찾아갔던 이유는 아포가 국공유지 위에 불법적으로 생겨난 곳이기 때문인데요. 아포의 사람들은 매년 17만~104만원의 변상금을 내며 생계를 이어가다 구청이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며 2016년 8월 모조리 사라지게 됐습니다.



산 7번지와 함께 가난했던 아현을 상징하는 곳이 한 곳 더 있습니다. 바로 아현 1동 699번지인데요. 이곳은 얼마전 영화 ‘기생충’에서도 소개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슬럼화된 동입니다. 애오개역과 충정로역 사이에 위치한 아현1동은 지속적인 재개발 사업 사이에서 홀로 개발되지 않으며 일제강점기 때부터 그 모습 그대로 잔존해오고 있는데요. 변화의 소용돌이를 그대로 비껴가며 번화한 도시와 완벽하게 분리되며 외딴 섬처럼 남아있는 곳이죠. 지금은 각종 잡기와 쓰레기로 가득 차 사람이 거의 살 수 없을 정도로 낡았는데 빈집들의 붕괴 위험으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흰색 천으로 문을 가리는 작업도 진행됐습니다.

현재 이 지역에 사는 집주인은 대다수가 외부에 나가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 40년 이상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정주하는 주민들도 대부분 직업이 없고 생산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많은 상태입니다. 아현 1동은 지난 2007년 아현 뉴타운 개발지로 선정됐지만 그동안 주민 동의률을 끌어올리는데 시간을 끌어오다 최근 본격 사업을 추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마용성' 이끄는 아현동...개발 얼마나 더 남았나



마포구의 아현뉴타운은 총 1에서 4구역으로 나뉘어져 약 10,300여 세대가 완공할 계획입니다. 현재는 아현3구역(마래푸)이 2014년 1차로 완공됐고 이후 아현 4구역(공덕자이)이 2015년에 완공됐습니다. 이후 아현 1-3구역에 아현 아이파크가 2017년 들어서며 순차적으로 완공을 마쳤습니다.

현재는 아현2구역과 아현1구역만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아현 2구역은 그동안 조합원과 개발사간 사건사고가 많았다가 최근 본격적인 사업 속도를 내고 있는 정비지구입니다. 특이한 점은 이곳에서는 토지 지분이 없는 건축물 소유자도 조합원 자격을 부여받게 됐단 점인데요. 예전부터 판자촌이 들어섰던 지역이다보니 땅 주인은 없지만 건축물을 짓고 살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아현 2구역은 조합원 세대수 1,232세대, 일반분양 45세대, 임대 142세대로 총 1,419세대의 건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미 2019년 8월에 착공신고를 하고 HDC와 SK건설이 컨소시엄으로 아파트를 올리고 있는 중이죠.

아현1구역(아현 699번지 일대)는 지난달 주민 동의율 67.4%로 정비구역 지정 요건인 66.7%를 넘어서 이제 본격적인 후속 절차에 돌입합니다. 약 10만여 제곱미터의 면적에 3,300여가구가 들어서기로 되어있던 이곳은 당초 3개 구역으로 나뉘어 아현1-1, 1-2, 1-3으로 지정됐고, 이 중 아현1-3지역은 2017년 ‘아현 아이파크’로 개발돼 입주가 이뤄졌습니다. 1-1구역과 1-2구역은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가 주민들의 요청으로 아현1구역으로 통합해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프리미엄만 8억이며 초기 투자금이 10억이 넘는 상태입니다.



북아현뉴타운은 1구역(1-1구역, 1-2구역, 1-3구역), 2구역, 3구역 총 5개 구역으로 나뉘어 개발되며, 약 89만9300㎡ 부지에 약 1만2000여 가구 규모의 새 아파트가 들어섭니다. 이미 1-2구역(아현역푸르지오 940세대), 1-3구역(신촌 이편한세상 1910세대)은 완공해 입주를 마쳤고 1-1구역(북아현 힐스테이트 1226세대) 역시 우여곡절 끝에 올 8월 초 입주를 시작해 입주권 웃돈만 약 8억원을 호가하고 있습니다.

그 외 북아현 2,3구역은 사업시행인가가 난 상태로 각각 자이, 롯데캐슬과 래미안, 이편한세상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북아현 2구역은 2,274세대, 북아현 3구역은 4,569세대가 예정된 대단히 넓은 단지죠. 아마 아현과 북아현의 뉴타운 공사가 끝나면 마포의 그림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지 않을까요?



사람이 묻히고, 결혼하고, 태어나며 수많은 서민들의 친구가 되어줬던 땅, 아현동. 이제는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대단지 아파트와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을 품을 아현동이 서울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해봅니다.

/정수현 기자 value@sedaily.com

/이종호 기자 phillies@sedaily.com

/차현진 인턴기자 ckguswls3@sedaily.com

/영상그래픽=김세림 인턴기자 tpfladudy@sedaily.com

/정수현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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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미디어센터 정수현 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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