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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사회
[국정농담] 이 와중에 文 '종전선언' 꿈, 北美는 과연 응답할까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최종건, 김현종, 이도훈까지... 돌연 줄줄이 방미

김정은 친서교환, 유엔 연설 녹화와 시점 맞물려

靑은 공식 부인했지만... 폼페이오 방한이 분기점

北은 NLL 딴지 걸고 '피격 사건 조사 주도' 의지

美에선 "文, 거꾸로 안다" "北 비핵화 먼저" 지적

중·일 무관심에 국내 여론 악화까지 '첩첩산중'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북한이 우리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사살하는 대형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우리 정보라인과 외교안보 고위급 인사들이 북한과 미국을 향해 최근 잰걸음을 보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외교 관계자 상당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시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행보로 진단하고 있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첫 단추인 만큼 임기가 20개월도 채 남지 않은 현 정부 입장에서는 서둘러 성취해야 할 최대 숙원 사업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무원 피격 사건과 별도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연락이 재개된 상황을 어떻게든 불씨로 삼아 종전선언을 재추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대통령 재선, 내부 경제위기 수습 등에 몰두 중인 미국과 북한이 이에 호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지적된다. 애초부터 이 문제에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한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의 ‘실질적인’ 지지를 끌어내거나 악화된 국내 대북 여론을 수습하는 것도 과제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연합뉴스


최종건, 김현종, 이도훈까지... 돌연 줄줄이 방미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7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에너지부, 상무부 등 정부 관계자들과 싱크탱크 인사 등을 면담했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한미 간 주요 현안 및 역내 정세 등에 대해 협의했다”며 “이번 방미를 통해 우리 측은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 행정부 및 조야의 한미동맹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양자 현안과 함께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고 덧붙였다.

김 차장의 방미는 사실 공개 일정이 아니었다. 원래는 국민들 모르게 극비리로 이뤄졌다. 청와대는 관련 언론보도가 나오자 그때서야 해당 사실을 확인해 줬다.

이달 들어 미국을 방문한 인사는 김 차장뿐이 아니다. 청와대 출신인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취임 직후인 지난 9∼12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등을 만났다. 당시 최 차관은 “10월 중순을 목표로 한미 ‘동맹대화’ 신설에 합의했다”면서도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한반도 평화 정착을 긴밀히 협의하겠다”며 27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본부장은 이날 출국 전 기자들과 만나 “지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는 데 있어 현재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며 “비건 부장관과 만나 대화 재개를 통해 한반도에 완전화 비핵화와 평화정착 과제를 어떻게 추진할지 긴밀하게 협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7일 미국으로 출국하는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연합뉴스


김정은과 친서 주고받고 유엔 ‘종전선언’ 연설 녹화

외교가에서는 이들의 방미 시점이 하필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친서를 주고받은 직후라는 점에 주목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달 8일 김정은에게 “국무위원장님의 생명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는 친서를 보냈고 김정은은 12일 “대통령의 친서를 읽으며 진심 어린 위로에 깊은 동포애를 느꼈다”는 답신을 보냈다. 피격 사건이 아니었다면 국민들은 계속 몰랐을 테지만, 남북 연락 채널은 물밑에서 계속 살아 있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종건 차관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 친서를 보낸 다음 날인 9일 미국으로 떠났다. 또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답신이 온 15일 ‘종전선언’ 유엔총회 연설을 녹화했다. 김현종 차장은 녹화 다음 날인 16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도훈 본부장은 25일 김정은의 ‘사과 통지문’이 온 직후 미국으로 갔다. 모두 전부터 예정된 일정이었지만 우연찮게도 각 시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달 초로 예상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방한을 계기로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한 포석을 두는 게 아니냐고 추정했다. 북한이 신형 전략 무기를 선보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10월10일 노동당 창건일과 11월 미국 대선 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진전을 만들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구상이 김정은의 사과 직후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보인 잇딴 대북 유화 제스처와도 연관된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다만 김 차장은 27일 본지 취재진에게 “종전선언과 관련 조율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는 분석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역시 같은 날 “김 차장 방미는 종전선언과는 무관하다”고 공표했다.

김정은. /연합뉴스


北은 NLL 딴지 걸고 ‘나홀로 조사’ 의지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 ‘종전선언’을 화두로 던진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 주변국들이 이를 우리만큼 긴급하게 검토할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당장 북한은 피격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추가·공동 조사 제안조차 거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김정은 사과 이틀 만에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거론하며 ‘더 이상 이 문제로 압박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북한은 27일 ‘남조선 당국에 경고한다’ 제목의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우리는 남측이 새로운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무단침범 행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특히 “서남해상과 서부해안 전 지역에서 수색을 조직하고 조류를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시신을 습득하는 경우 관례대로 남측에 넘겨줄 절차와 방법까지도 생각해두고 있다”며 “우리 해군 서해함대의 통보에 의하면 남측에서는 지난 25일부터 숱한 함정과 기타 선박들을 수색작전으로 추정되는 행동에 동원하면서 우리 측 수역을 침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같은 남측의 행동은 우리의 응당한 경각심을 유발하고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하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이번 사건에 대해 굳이 NLL 문제를 건든 것은 수색 작업 과정에서 시신 소각 등 북한 측이 주장한 진상과 다른 사실관계가 발견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NLL 이슈를 재점화해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남한은 NLL을 기준으로 ‘등거리-등면적’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나 북측은 1999년 9월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 해상경비계선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북한이 주장하는 분계선은 NLL보다 훨씬 아래이기 때문에 북측 주장을 받아주게 되면 사실상 우리가 수색할 수 있는 영역은 확연히 줄어든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긴급 안보장관 회의에서 남북 공동조사를 공식 제안하기로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연합뉴스




美 전문가들 “문 대통령은 거꾸로 알고 있다”

미국 전문가그룹 쪽에서는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더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기류가 감지됐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미국의 소리(VOA)’는 24일 한반도 문제를 다뤘던 전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종전선언에 하나같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은 VOA에 “한국전쟁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완전한 비핵화의 길을 열어주지 못한다”며 “종전선언은 중국, 러시아, 북한이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구실만 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미국 의회, 행정부의 입장과 이렇게 일치하지 않는 연설을 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며 “평화와 통일로 향하는 한 단계로서 평화조약 체결을 촉구했다면 괜찮았겠지만 평화를 선포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꼬집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문 대통령이 거꾸로 알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전 종전 선언이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열쇠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한국전쟁을 영구히 종식시키기 위한 필요 조건”이라고 말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 회담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는 “한국전 종전 논의를 시작하는 순간 대북제재와 핵무기 프로그램 해체, 인권 우려 해소 절차까지 묻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 또한 23일(현지시간) 문 대통령이 제시한 종전선언의 실현 가능성과 선행 조건 등을 묻는 언론 질의에 “우리는 북한에 대한 단합된 대응에 있어 긴밀한 조율에 전념하고 있다”며 조금은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연합뉴스


존 볼턴 “北도 신경 안 쓰는데 미국이 왜 하나”

‘종전선언’과 관련한 북한과 미국의 입장은 지난 6월 발간된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도 일부 엿볼 수 있다. 볼턴 전 보좌관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도 주요 주제였다고 회고하면서 “나는 원래 종전선언이 북한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이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볼턴 전 보좌관은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도 백악관 회의에서 ‘종전선언’이 언급됐다는 사실을 전하며 “북한도 우리에게 문 대통령이 원하는 종전선언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서술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왜 그걸 추구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2018년 7월7일만 해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담화를 통해 ‘종전선언’을 세 차례나 언급하며 폼페이오 장관에 실망을 표현하는 등 북한도 분명히 의지를 내비쳤다는 것이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연설한 날 유엔총회 화상 연설에서 재임 중 처음으로 북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그가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 문제가 호재로 작용하긴 어려울 것이란 판단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중국·중동 등 다른 나라와의 외교 관계보다 북한의 중요도가 떨어지는 점도 ‘패싱’의 배경으로 꼽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중국·일본도 무관심... 국내 대북 여론 악화도 과제

한국전쟁의 당사자 중 하나인 중국은 ‘종전선언’도 미국 견제 관점에서 바라보고 지지를 표하는 편이다. 다만 최근 미중 갈등 현안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면서 한반도 문제는 다소 후순위로 밀린 분위기다. 더욱이 외교가에서는 한국이 북미대화에 목메면서 미국 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것을 중국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도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 역시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문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내부적으로는 어차피 추진해 봤자 북미관계는 달라지지 않을 게 빤한데 왜 계속 미국 눈치를 보는지 이해 못한다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일본은 애초부터 ‘종전선언’에 부정적인 국가다. 볼턴 전 보좌관 회고록에 따르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닷새 전에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김정은을 믿지 말라”며 ‘종전선언’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스가 요시히데 현 총리도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아베 전 총리와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는 지난 1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만나 “일북(북일) 평양선언을 토대로 납치·핵·미사일 등 여러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한 뒤 과거를 청산하고 일북 수교를 실현한다는 게 일관된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공무원 피격으로 악화된 국내 대북 여론도 부담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어진 상황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끌어내기도 녹록잖다. 마음 급한 문재인 정부가 아직도 넘을 산이 많은 이유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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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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