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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거리예술 영웅' 한국에 왔다

인종차별 딛고 '거리문화' 일군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 대표작

오늘부터 롯데뮤지엄서 전시

회화·조각·사진 등 150여점

작품가격 최소 5,000억 달해

장 미셸 바스키아의 1987년작 ‘Victor 25448’ /사진제공=롯데뮤지엄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가출한 열여섯 살짜리가 노숙자처럼 지내며 스프레이 낙서 그림으로 뉴욕 거리를 휘젓다가, 갓 스무 살에 혜성처럼 미술계에 등장해 8년 동안 3,000여 점의 불꽃 같은 작품을 남기고는 약물 중독으로 젊은 생애를 마무리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신화’는 지금쯤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별이 된 ‘거리의 영웅’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가 한국에 왔다. 서울 잠실의 롯데뮤지엄에서 8일 개막하는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전을 통해서다. 대형 회화부터 드로잉과 조각, 세라믹(도자), 사진 등 15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은 대규모 전시다. 주최 측이 밝힌 전시작에 대한 보험액만 5억 원, 실제 작품가격은 최소 5,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장 미셸 바스키아. /사진제공=롯데뮤지엄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영웅,예술’ 전시 전경. /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별이 된 ‘예술영웅’=지난 2017년 5월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 바스키아의 1982년작 회화 ‘무제’가 나왔다. 가을 하늘처럼 맑은 파란색 바탕에 낙서 같은 거친 붓질로 검은 얼굴의 사내를 그린 그림. 바스키아 그 자체였다. 경합이 붙었다. 예상가를 크게 웃도는 1억1,050만 달러(약 1,380억원)에 낙찰됐다. 앞서 1984년 경매에서 1만9,000달러(약 2,300만원)에 팔렸던 그림이었으니 33년 만에 무려 5,800배 이상 오른 셈이다. 세기를 관통하며 치솟은 바스키아의 위상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검은 피카소’라고도 불리는 바스키아는 낙서도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1세대 작가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부모가 갈라섰고 집을 뛰쳐나왔으며 학교마저 그만뒀다. 타락할 뻔한 그를 예술이 구했다. ‘흔해 빠진 낡은 것(Same Old Shit)’이라는 뜻의 ‘세이모(SAMO)’라는 가상 인물을 창조해 뉴욕 건물의 벽을 낙서하기 시작하더니 2년 뒤에는 ‘세이모는 죽었다’는 글귀로 다시 이목을 끌었다. 1980년에 공식적으로 데뷔해 1982년에 세계 최정상 화랑인 가고시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유럽의 가장 권위 있는 국제미술제인 카셀도큐멘타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했다. 뛰어난 작가는 작가들이 먼저 알아본다. ‘낙서화가’ 키스 해링과 교류했고, 바스키아의 재능을 한눈에 발견한 앤디 워홀이 그를 키워주다시피 후원해 둘의 공동작업도 탄생했다. 성공할수록 외로웠던 바스키아는 워홀이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묘지 그림을 그릴 정도로 비통해 하다 약물 중독으로 요절했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1982년작 ‘무제(노란 타르와 깃털들)’ /사진제공=롯데뮤지엄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영웅,예술’ 전시 전경. /사진제공=롯데뮤지엄


◇광기와 순수의 공존=전시는 뜨거웠던 바스키아의 생애를 비교적 차분하게 보여준다. 바스키아의 그림에는 비극과 유머가 공존한다. 색채는 한껏 밝고 당당하나 분위기는 고독하다. 붓질은 힘차지만 억울한 발버둥처럼 애처롭다. 즉흥적이고 거침없는 선에 절규가 흐르는 동시에 그 틈새로 희망의 노래가 들려온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모든 게 느리게 보였다”고 기억한 8살 무렵의 교통사고로 큰 수술을 한 바스키아는 당시 접한 해부학에 대한 관심을 그림 속 해골 같은 얼굴과 뼈다귀로 탄생시켰다. 유난히 그렸다 지운 흔적, 덧칠이 많은 것에 대해 작가는 “더 잘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단어들을 선을 그어 지워버린다. 흐릿하게 보이는 글자들은 더욱 읽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이후 미국미술의 중요한 흐름이 된 팝아트가 소비문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과 맞물려 바스키아의 ‘거리예술’ ‘하위문화’는 가장 탐나는 작품이 됐다. 노숙자 시절, 문짝과 울타리에 그림을 그리던 것이 나중에는 독특한 바스키아의 화풍이 됐다. 전시장에서는 나무판에 그린 대형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어릴 적 인종차별을 경험했던 그는 초상화 작업에서 아프리카계 음악가와 운동선수를 그려 ‘흑인 영웅’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왕관 표시, 저작권기호(ⓒ), 슈퍼맨의 앞글자인 ‘S’ 등은 바스키아가 즐겨 사용한 도상들이다. 내년 2월7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장 미셸 바스키아의 1981년작 ‘낡은 자동차들’ /사진제공=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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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친절한 금자씨는 예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날 세운 풍자와 노골적인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위작 논란도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착한미술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으로 쏘다니며 팔자 좋은 기자. 미술, 문화재 전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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