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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통일·외교·안보
[국정농담] 강경화 때린 32살 北김여정, 왜 자꾸 南 혼내는가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김여정 "강경화 주제 넘은 평, 두고두고 기억"

비건 방한 겨냥 분석부터 康장관 교체 우려까지

3월부터 담화 낼 때마다 독설...김정은이 수습

연락소 폭파 땐 김연철 사퇴, 삐라금지법 추진

확진자 '0' 자존심 상처...백신지원 거절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6개월 만에 우리 정부를 또 비난하는 담화를 냈다. 이번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표적으로 삼아 보통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거친 발언을 공식 채널을 통해 대외적으로 또 쏟아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여정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방한을 겨냥했다는 평가 속에 이러다가 현 정부의 유일한 ‘원년 멤버’인 강 장관까지 2차 개각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게 아니냐는 추정이 나왔다. 우리 정부가 남북 보건협력에 강력한 시동을 거는 가운데 북한이 백신 지원 등에 응할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었다. 한편에서는 2인자 자리를 공고히 한 김여정이 대남 업무에서 악역을 자처하면 오빠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를 온건하게 수습하는 식으로 또 다시 역할을 분담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3월 이후 김여정이 우리 정부를 향해 듣기 좋은 말을 내놓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항의도, 구체적 반응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5일 바레인에서 마나마 대화에 참석해 연설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김여정 “강경화 주제 넘은 평, 두고두고 기억”

김여정은 지난 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네 문장짜리 8일자 담화를 내고 “남조선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 행각 중에 우리의 비상방역 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며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속심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며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5일 바레인에서 열린 마나마 대화에서 나온 강 장관 발언을 꼬집은 담화였다. 당시 강 장관은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지원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 도전(코로나19)이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이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코로나19를 통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것은 조금 이상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김여정의 대남 비난 담화는 지난 6월17일 탈북민 단체의 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반년 만에 나온 것이었다. 남한 장관의 한 마디 발언에 카운터파트인 리선권 외무상도 아닌, 북한의 2인자가 본인 명의로 담화를 낸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1955년 생인 강 장관은 1988년 생인 김여정에게는 ‘어머니뻘’이다.

김여정이 직접 나선 것은 그 동안 ‘최고 존엄’인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하며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는 와중에 강 장관 발언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그나마 북한 전 주민이 보는 노동신문 등에 실리지 않고 대외적으로만 담화가 나와 수위는 조절했다는 평가였다. 북한이 그간 한국을 얘기하는 척 하면서도 늘 미국 시간대에 맞춰 주요 담화를 내놓고 관심을 끌어 왔음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일부러 비건 부장관 방한 시점에 맞춰 미국 측의 관심을 유도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6월16일 폭파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연합뉴스


하노이 노딜 이후 돌변한 ‘2인자’, 입만 열면 독설

문재인 정부 초반만 하더라도 남북관계 개선에 첨병 역할을 맡은 듯했던 김여정이 이같이 돌변한 것은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부터로 추정된다. 특히 올 3월3일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는 제목의 첫 담화를 통해 우리 정부에 독설을 퍼부으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자세를 취했다. 당시 김여정은 “청와대의 행태가 세 살 난 아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며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 하는 짓거리 하나 하나가 다 그렇게도 구체적이고 완벽하게 바보스러울까”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참으로 미안한 비유이지만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고 했다. 딱 누구처럼”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김여정은 지난 6월4일에도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는 담화를 아예 주민들이 모두 보는 노동신문에 냈다. 그는 탈북민들을 “사람 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들”이라고 표현하며 “함부로 우리의 최고 존엄까지 건드리며 ‘핵문제’를 걸고 무엄하게 놀아댄 것”이라고 비난했다. 통일선전부 대변인은 다음날인 5일 담화문에서 김여정을 언급하면서 “대남 사업을 총괄한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달 13일에 또 담화를 내고 “다음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며 “머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후 3일 뒤인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정말 형체도 남기지 않고 폭파됐다.

6월1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20주년 메시지를 두고도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늘어놓았다”며 “명색은 ‘대통령’의 연설이지만 책무와 의지, 현 사태수습의 방향이나 대책이란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고 자기변명과 책임회피, 뿌리 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된 연설을 듣자니 속이 메슥메슥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비꼬았다. 7월10일에는 미국을 상대로 담화를 내고 연내 북미정상회담은 없으리라고 주장하면서도 “(미국의) 독립절 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는 데 대해 위원장 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남 업무를 지휘하는 김여정의 공식 지위와 직책은 내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한 번 더 격상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은. /연합뉴스


김여정 한 마디에 강경화 교체 우려까지

일각에서는 이번 김여정 담화로 애초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지 않던 강 장관의 거취에도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현 정부가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내에 남북관계 개선을 최대 과제로 삼는 만큼 김여정의 독설을 완전히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지난 4일 1차 개각 이후 강 장관은 현 정부의 유일한 ‘원년 멤버’로 남아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여정 담화를 거론하며 “맥락을 살펴보면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면 강 장관을 교체하라는 메시지처럼 들린다”며 “앞으로 강 장관을 교체할 경우에도 마치 우리 정부가 김여정의 요구에 의해 외교부 장관을 교체하는 듯한 모습 보여주게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에서 “김여정에게 찍힌 강 장관이 문 대통령에게도 찍힌 건가, 청와대와 정부, 민주당에서 강 장관을 도와주는 사람 하나도 없다”며 “김여정에게 찍히면 문재인 정권에게도 찍혀 철저히 외톨이가 된다는 걸 강 장관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직후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옷을 벗었고, 더불어민주당은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야당의 비판을 무릅쓰고 지난 4일 대북전단금지법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안보특별보좌관은 김여정이 도발 위협을 한창 내놓던 지난 6월11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김여정 부부장이 사실상 남북 관계 개선에 제일 앞장섰다”며 “김여정 부부장의 성명이라는 것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자아비판 같은 부분도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정례브리핑에서 김여정의 비난에 대해 별다른 항의성 발언은 없이 “강 장관은 북한을 포함한 국제적 방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같은 날 김여정 담화와 관련해 “특별하게 언급할 사항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北에 백신 주려던 韓정부 ‘공감대’에도 차질 우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치료제 지원을 필두로 교류의 물꼬를 터 보려는 계획에 당분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정은의 성과를 우리가 공식적으로 부인한 꼴이 됐다는 점에서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여정 담화 전날인 지난 8일 북한 백신 지원 문제에 대해 “보건당국과 아직 구체적으로 협의하지 않았으나 정부 내 공감대는 형성된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강 장관의 발언은 진의가 어떻든 ‘코로나19 확진자 제로’라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최대 성과를 정면에서 부인하는 모양새가 돼 버렸기 때문에 추가 반발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북한에 대한 백신 지원을 추진하고 있는 범정부적인 움직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고 북한 측의 수용 가능성도 더욱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공개한 ‘코로나19 주간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10월29일 기준으로 북한의 의심 증상자 수는 6,173명이지만, 확진자는 한 명도 없는 상태다. 김정은 역시 지난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예상치 않게 맞닥뜨린 방역 전선과 자연재해 복구 전선에서 우리 인민군 장병이 발휘한 애국적 헌신은 감사의 눈물 없이 대할 수 없다”며 울먹인 바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11월19일 ‘비상방역사업은 당과 국가의 제일 중대사’라는 논설을 내고 “지금 우리 모두는 없어도 살 수 있는 물자 때문에 국경 밖을 넘보다가 자식들을 죽이겠는가 아니면 버텨 견디면서 자식들을 살리겠는가 하는 운명적인 선택 앞에 서 있다”고 폐쇄 조치를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그간 김여정이 독한 말을 내뱉으면 김정은이 곧바로 화해의 손짓을 보내 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김정은 선에서 상황이 정리될 수 있다는 희망적 분석도 제기됐다. 이른바 ‘굿캅·배드캅’ 전략이라는 것이다. 김정은은 김여정의 첫 담화 다음 날에도 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사태를 위로하는 친서를 보냈고, 6월에도 김여정이 경고한 군사 행동 계획을 직접 보류한 바 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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