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

사회사회일반
[국정농담] 양승태 잡으려다 부른 ‘죽창가’에 답 없어진 韓日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文, 3.1절에 구체적 해법 없이 대일 유화 메시지만

美 삼각공조 강조에도 정의용-모테기 통화는 아직

양승태 사법부 檢수사 때 강제징용 의혹 나비효과

판결 전후 골든타임 때 소극적 외교로 아베에 '역공'

전략 부재 상태의 준비 안된 갈등에 실익도 못얻어

YS·DJ와도 달라...양국 감정 악화, 文임기 넘길 수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최근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은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에 ‘미래 지향적 관계’를 강조한 메시지를 던졌다. 다만 일본에서 그간 강조해 온 ‘강제징용·위안부 판결 관련 해법’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양국 관계에는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법조계와 외교가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을 밝히려던 시도가 나비효과로 번져 예기치 않은 한일 갈등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정부가 외교적 대응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국내 정치를 위한 적폐청산 이슈, 사법부 이슈였던 사안이 외교 갈등으로 막 번지는 와중에도 정부는 1년에 가까운 ‘골든타임’을 소극적 대응으로 흘려보냈고, 아베 내각은 보복 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었다.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작정한 상태에서 일본과 싸운 게 아닌 만큼 우리나라가 한일 갈등 국면에서 얻은 실익에도 의문 부호가 붙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후에는 미국의 동맹 강화 구상에 한일 관계 복원이 핵심 과제가 됐는데, 이미 양국 국민들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해 적어도 문 대통령 임기 내에는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바이든 대통령 구상에 최대한 협조해 북미 대화를 재개하고 다음 대선까지 남북관계 개선 성과를 거두려던 우리 정부의 복안에도 먹구름이 낄 가능성이 점쳐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日에 유화 메시지 던졌지만…구체적 방안은 안 내놓은 文

외교가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부임한 강창일 주일 대사는 나루히토 일왕에게 ‘천황 폐하’라는 호칭까지 썼지만 벌써 한 달 넘게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을 만나지 못했다. 이달 9일 취임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 역시 모테기 외무상과는 아직까지 연락하지 않은 상태다. 한일 양국이 현재 얼마나 갈등 국면에 있는지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시작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문 대통령이 얼마나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느냐에 따라 한일 관계의 향방도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예상대로 일본을 향해 ‘미래 지향적 관계’를 재차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다”며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한일 양국이 분업 구조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룬 점을 강조하면서 양국 간의 미래 지향적 협력이 동북아는 물론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도 과거와 미래를 분리하자는 기존의 ‘투트랙’ 접근법과 피해자의 동의 없는 합의는 불가능하다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한일 관계에 가장 핵심 쟁점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판결을 풀어나갈 구체적인 외교적 해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를 들고 상당수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사실상 일본이 아닌, 국내 여권 지지층과 미국을 향해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메시지만 던진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다음 정부까지 한일 갈등의 짐을 안고 가려는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일본 정부의 반응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요한 것은 양국 간 현안 해결을 위해 한국이 책임지고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과거사 판결에 먼저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기존 ‘원트랙’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양승태 사법부 적폐청산이 돌연 ‘반일 이슈’로

외교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애초부터 정부의 구체적인 대일 전략이 부재한 상태에서 한일 갈등 국면이 조성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어디에도 없던 ‘극일’ 이슈가 사법농단 수사와 이에 따른 강제징용 판결로 갑자기 부각됐기 때문이다.

한일 갈등의 시작은 엉뚱하게도 지난 2017년 초 정권 교체기에 불거진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승태 사법부에 비판적이었던 법관들에 대해 일종의 사찰과 인사 불이익이 있었다는 이 의혹은 박근혜 정부 적폐청산의 마지막 퍼즐처럼 간주됐다. 그러나 법원은 2018년 5월까지 세 차례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마지막 3차 조사 과정에서 양승태 사법부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 철도노조 파업 사건, 통상임금 판결,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 판결 등을 청와대에 협조한 사례로 표현한 문건이 다수 나오면서 커졌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그 직후부터 재판개입, 나아가 재판거래 의혹으로 뒤바뀌었다.

사건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과 이성윤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의 지휘 아래 사법부 역사상 첫 대대적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전직 대법원장과 전·현직 대법관, 100명이 넘는 판사 등 법조계 최대 난적을 상대해야 했던 검찰은 다른 주요 수사들을 ‘올스톱’ 한 채 이 사건에 사상 최대 인원을 투입했다.

검찰 수사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뇌물·횡령·사기 등 관련자들을 확실하게 유죄로 처리하거나 구속시킬 수 있는 권력형 범죄 혐의·증거·증언이 쉽게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투입된 검찰 인원이 무색하게 대다수 판사들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장담할 수 없는 직권남용 혐의로만 기소됐다.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경우도 2019년 2월 구속 기소 때 적용된 47개 혐의 중 직권남용 혐의만 무려 41개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수사 한 달 만인 2018년 7월, 우연찮게도 강제징용 판결 고의 지연 의혹이 법원 내부 폭로와 함께 구세주처럼 터져 나왔다. 일제 피해에 대한 국민 감정은 정파와 진영을 초월한 만큼 이 의혹은 좌우 대립 문제가 있었던 다른 의혹보다 휘발성이 훨씬 더 강했다. 사법농단 수사에 본격적으로 여론의 힘이 실렸다.

2018년 11월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가족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만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文 경고 한달 만에 강제징용 판결 나왔지만…외교 대응은 ‘소극’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대법원은 2018년 7월 곧바로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사건 심리는 이례적일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외교관계 등을 이유로 5년이나 미뤘던 대법원 판결이 그해 10월30일,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고작 3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끝났다.

특히 판결 한 달 전인 9월13일 사법부 70주년 행사 당시 대법원을 직접 방문한 문 대통령의 ‘기념사 아닌 기념사’는 법원에 큰 울림이 됐다. 당시 문 대통령은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었음에도 ‘사법농단’ ‘재판거래’라는 용어를 드러내놓고 사용했다. 전례 없이 엄중한 경고였다. 이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같은 자리에서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화답했다.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은 당시만 해도 양승태 사법부의 문제가 ‘사필귀정’으로 귀결되는 과정처럼 이해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대법원이 외교 갈등이 뻔히 예상되는 판결을 속전속결로 내놓은 상태에서 후속 작업은 정부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법조계 인사 대다수는 우리 정부가 당연히 물밑에서 일본과 외교 교섭을 진행 중일 것으로 추정했다. 적어도 판결 직후부터는 정부의 대일 외교라인이 빠르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법원이 아무리 피해자들에게 억만금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더라도 당사자인 일본 측이 응답하지 않으면 그 판결은 돈도 받아내지 못하고 외교 갈등만 유발하는, 선언적 선고에 그치기 때문이었다.

한일 간에 무의미한 소모전을 피할 수 있었던 최고의 골든타임도 바로 이때였다. 첫 번째 골든타임은 강제징용 판결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뒤부터 선고가 나기까지 걸린 3개월 간, 두 번째 골든타임은 강제징용 판결 이후 이듬해 7월1일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까지 걸린 8개월 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일 사이에는 치명적일 정도의 갈등 사안이 없었다. 이슈를 국내 정치로만 한정하고 물밑에서 일본과 교섭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는 얘기다. 일본과의 갈등 가능성을 예견했다면 ‘플랜B’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와 같은 투쟁적 대응 전략을 마련할 수도 있던 시기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연합뉴스


반한감정 이용한 日 보복에…韓 ‘노 재팬’ 운동만

하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당위적 입장을 내놓은 게 전부였다. 판결 이후 수 개월 동안 당황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인 외교적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 정부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한일 간 외교 이슈가 아니라 사법농단 규명, 적폐청산, 피해자 구제 등 철저하게 국내 내부 정치 이슈로만 다루는 태도를 보였다. 법률적 영향 때문에 유독 일본통이 많은 법조계와 외교가에서 일본이 철저하게 보복을 준비할 것이라는 관측을 지속적으로 내놓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렇게 외교적 골든타임은 별다른 대책이 없이 흘러만 갔다. 당시 정부의 외교적 관심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등 대북 문제에 집중된 분위기였다.

한일 양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일본 내 반한 감정이 고개를 들자 아베 내각은 이를 이용해 2019년 7월1일 기습적으로 한국에 수출규제 보복 카드를 꺼냈다. 이후 양상은 준비된 싸움에 나선 일본과 미처 대비하지 못한 한국 정부의 수세적 방어로 진행됐다. 우리 정부는 그해 8월 일본 측에 지소미아 종료를 통보했다가 미국 측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에 같은 해 11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중지하고 지소미아 종료 효력을 유예했다.

한일 양국 여론도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한국에서는 반일 여론이, 일본에서는 반한 여론이 돌이킬 수 없이 확산됐다.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사실상 한국이 취한 최대 저항이었다. 국내 여론도 양분됐다. 누군가 “일본과 지금 왜 싸우는 것이냐”고 묻거나 “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안만 해도 여권 지지자들에 의해 현대판 이완용과 같은 낙인이 찍혔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핵심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토착왜구’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 ‘죽창가’ 노래를 게시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2020년 3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선제적 입국제한 조치와 우리 정부의 상응 조치는 한일 갈등이 양국 국내 정치에 이용되는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아베 당시 총리는 국민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려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 했고, 한국의 일부 여권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반일’을 그해 4월 총선의 주요 프레임으로 설정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단행된 직후인 2019년 7월13일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페이스북에 올린 ‘죽창가’. /자료제공=조국 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YS·DJ와도 다른 대응…바이든 당선 이후 상황 급변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대일 외교는 민주화의 대부로 불린 전직 대통령들의 업적과도 크게 구별되는 행보였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3월 일본에 물질적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는 그해 8월 고노 요헤이 관방 장관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른바 ‘고노 담화’다. 우리가 도덕적 우위에 서서 돈이 아니라 진상 규명과 사과·반성만 명확히 요구해 얻은 결과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아가 1998년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와 미래를 함께 하자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당시는 일제 시대를 경험한 국민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때라 반일 감정의 골이 더 깊었던 시대였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럼에도 대중문화 개방 등에 대한 국내 반대 여론을 직접 돌파했다. 임기 초부터 탄탄하게 구축한 한일 관계는 새로운 대북 정책 추진에도 강한 동력이 됐다. 이에 비하면 지금의 한일 관계는 그야말로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동맹 관리에 무심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에는 한일 갈등 이슈가 양국 국가지도자와 여권 지지율 관리 등에는 상당 부분 보탬이 됐다. 우리 정부의 최대 외교 목표인 남북 관계 개선에도 별다른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양국의 국익에만 손해를 끼쳤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난해 11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상황이 바뀌었다. 바이든 정부는 초기부터 중국에 대항하는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조하고 나섰다. 여기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의 숙원인 북미·남북 관계 복원 구상도 물거품이 될 처지가 됐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재판거래 의혹으로, 재판거래 수사의 핵심이 강제징용 판결로, 외교적 준비 없이 속전속결로 내려진 판결이 아베 총리의 정치적 악용과 보복 조치로, 한일 갈등이 보수층과 중도층에 대한 ‘친일파’ 몰이로, 악화된 양국 여론이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미 관계 불안 요소로, 불안한 한미 관계가 대북 전략에 대한 차질로 나비효과처럼 번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모든 과정은 문 대통령 취임 당시 공약이나 국정 계획 상엔 전혀 없던 것들이었다.

2019년 8월6일 서울 중구 남대문 앞에서 서울 중구청 관계자가 일본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노(보이콧) 재팬’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배너기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망가진 양국 감정에 日 요지부동…文 임기 넘길 수도

우리 정부는 부랴부랴 한일 관계 개선에 팔을 걷어붙였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한일의원연맹 소속 의원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예방하는 등 자세를 완전히 고쳐 잡았다. 하지만 일본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는 스가 총리의 고집만으로는 해석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일본도 어찌 됐든 민주주의 국가라서 여론이 반전해야 정치인들도 움직이는데, 일본 여론을 다독일 카드는 오직 강제지용·위안부 소송 방지법 등 과거사 관련 대책 뿐인 탓이다. 과거사에 대한 아무런 해법도 없이 이제 와서 “투트랙으로 나눠 미래로 나가자”고 백 번을 제안한들 일본 여론이 움직이기는 힘들다는 진단이다.

국내적으로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강하게 조성 반일 여론이 문 대통령의 전향적 제안을 주저하게 만드는 최대 요인으로 분석된다. 재·보궐 선거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지지층에 보인 대일 기조를 모두 뒤엎는 카드를 꺼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가지 남은 변수는 2015년 오바마 정부의 위안부 합의 개입과 같은 미국의 관여 가능성이다. 실제로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일본을 방문한 뒤 17일부터 곧바로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난 4일 보도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와 스가 내각 모두 차라리 문 대통령의 퇴임까지 기다린 뒤 차기 한국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한일 관계를 재설정하려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치부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증권 중소기업 과학 IT 유통 법조 등 출입했습니다.
최소한 세상에 부끄럽지는 말자 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중입니다.
기자채널로 이동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이종환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발행 ·편집인 : 이종환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