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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로비의 그림]뿌리깊은 은행이 간직한 자유·희망·생명의 노래

윤명로,석란희의 푸른 추상화

서민 어루만지는 배륭 '착한 사람들'

건물 자리에서 나온 나무 뿌리 작업

도상봉 '서울전경' 문화재급 희귀작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윤명로의 1999년작 '익명의 바다'를 마주하게 된다.




하늘과 구름이 하나 된 땅, 파도와 포말이 뒤엉킨 바다 끝에서 파란 희망이 깜빡인다. 그 무엇에도 연연하지 않는, 무위의 경지에서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만난다. 서울 중구 회현동2가의 우리은행 본점 로비에 들어서면 맨 처음 보이는 작품, 원로 화가 윤명로(85)의 푸른빛 그림의 첫 인상이다.

아무렇게나 막 그은 선, 덕지덕지 칠한 색 같겠지만 실은 오랜 숙고의 시간 끝에 터져 나온 작업이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그림이 안 그려진다. 여기서 ‘안 그려진다’는 말은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뭘 그렸는지 모를 낙서 같은 그림 뒤에 ‘긴 사연’이 숨어 있는 이유다. 윤명로의 작품은 풍랑의 한복판 같은, 앞도 안 보이고 눈 뜨기도 쉽지 않은 시절을 살았던 꿋꿋한 작가의 몸부림이었다.

20대 윤명로의 작업은 찐득하고 음울했다. 박서보,하종현,김종학 등 다들 그랬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기존의 가치들을 부정하며 피폐해진 정서로 ‘쳐바르듯’ 그린 추상화를 미술사에서는 앵포르멜(Informel·비정형 추상미술)이라고 하는데, 해방과 한국전쟁과 사회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1960년대 작업도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4·19혁명 직후인 지난 1960년의 가을, 당대 최고 권위의 미술 전람회였던 국전(國展)이 한창인 덕수궁 미술관 바깥쪽 돌담에 그림이 줄줄이 걸렸다. 벽전(壁展)이다. 윤명로를 필두로 서울대와 홍익대를 갓 졸업한 젊은 화가 12명이 ‘60년미술가협회’를 결성해 ‘반(反) 국전’을 선언한 길바닥 전시였다. 윤명로는 1959년 국전에서 재학생 신분으로 특선까지 받은 혜성 같은 존재였다. 사형수가 주인공인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벽’에서 영감 얻은 ‘벽B’로 수상하며 단숨에 화단의 주목을 끈 그는 상의 등급에 따라 작품과 작가를 서열화하는 미술계의 철벽 풍토를 목도하고 그 ‘벽에 벽으로’ 저항했다. 패기 있는 젊은 화가를 향해 의식 있는 원로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후 1970년대에는 지켜지지 않는 약속, 규범과 질서의 붕괴를 녹아내리고 부서져 버린 이미지로 표현한 ‘자’ 시리즈를 선보였다. 영어로는 ‘룰러’ ‘지배자’라는 뜻도 담고 있는 이 단어는 독재에 대한 그 나름의 저항적 표현이기도 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철저한 계산 속에 물감이 갈라지게 한 ‘균열’, 무작위로 선을 그어 고고한 예술가의 행위를 얼레(연줄·낚싯줄 등을 감는 도구) 풀 듯 풀어버리고 비워버린 ‘얼레짓’ 연작에도 말없이 깊은 속내만 담았다.

우리은행 본점 1층 영업장에 걸린 윤명로의 1999년작 '익명의 땅'


우리은행 본점 로비에 걸린 윤명로의 1999년작 ‘익명의 땅’과 ‘익명의 바다’는 이 같은 변화 속에 지속한 40년 추상 활동의 절정기 작품들이다. 토끼 사육장으로 쓰였다는 충북 부강의 대형 창고를 작업실로 쓰게 된 1990년의 어느 날, 화가는 거대한 자연과 깊은 교감을 느꼈고 이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자아가 통제받지 않는 익명성의 자유”를 경험한 그는 망망대해를 헤매던 탐험가가 발견한 태초의 대지 같고 태초의 바다 같은 작품에 ‘익명’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나는 텅 빈 여백을 기초로 해서 하나의 형(形), 하나의 색(色)을 봅니다. 이름 지을 수 없는 이러한 형과 색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는 것, 들리지 않으면서도 들리는 것, 황홀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보며, 들리지 않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들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나타내려는 나의 행위를 나는 격이라 부르며 영원히 익명의 땅으로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은행 본점 1층 영업장에는 추상미술의 거장인 윤명로의 '익명의 땅'(오른쪽)과 석란희의 '자연'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우리은행 본점 1층의 높다란 벽에는 유독 파란색 작품들이 많다. 우리은행의 상징색은 밝은 청색. 그 푸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의 여명이 우리은행 CI다. 윤명로의 가로 215㎝, 세로 155㎝의 대작 2점은 출입구 정면 쪽 벽에 각각 걸려 있다. 그 맞은 편에는 원로작가 석란희(82)의 푸른색 그림 ‘자연’ 2점이 자리잡았다. 이중섭미술상 수상자(2005)인 그 또한 격정의 1970년대를 보냈다. 동양화의 ‘그리기’ 개념과 서양화의 ‘칠하기’ 기법을 통합해 독특한 추상화풍을 이룬 석란희가 지난 수십 년간 던져온 화두가 바로 ‘자연’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은행의 본점에서 원로 화가의 중요한 작품을 마주하게 되는 기쁨은 만국 공통이다. 격랑의 세월을 묵묵히 걸어온 은행의 역사와 천변만화의 사회상을 응축해 추상화로 다 품어버린 그림이 한 공간에서 공명한다.



우리은행은 1899년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나라 이름 ‘대한’에 ‘하늘 아래 첫째(天一)’라는 뜻을 담아 설립한 ‘대한천일은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제의 금융침탈에 맞서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벌인 민족은행이다. 나라를 뺏기면서 1911년 은행 이름에서 ‘대한’을 잃었고 해방 후에는 ‘조선상업은행’이 ‘한국상업은행’으로 바뀌었다. 외환 위기 당시 한일은행과 합병했고 100주년을 맞은 1999년 말 지금의 회현동에 자리 잡으면서 ‘우리은행’으로 명칭도 변경했다.

우리은행 본점 로비에 전시된 배륭의 '착한 사람들'(왼쪽)과 건물 자리에 250년간 살았던 느티나무 뿌리를 이용한 김영일의 '회생'


로비 안쪽의 프라이빗뱅킹 서비스 ‘투 체어’ 입구 왼쪽에서는 배륭(1930~1992)의 작품이 자산가들을 맞는다. 우리나라에 현대적 판화를 도입한 선구적 화가인 배륭은 1990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국상업은행의 ‘시각 고문’을 맡은 인연이 있다. 매스게임을 하듯 검은 깃발을 꼭 쥐고 낮게 엎드려 전진하는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그린 작품에 작가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똑같은 사람인 것 같지만 구부린 등과 치켜든 팔이 제각각이다. 반복이 만드는 리듬감이 착한 소시민들의 등을 다독이는 듯하다. 건너편 나무 조각은 김영일의 ‘회생(回生)’이다. 이곳 본점 건물 자리에는 250년 된 큰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신축 공사와 함께 불가피하게 뿌리 뽑히게 된 귀한 생명을 그냥 버릴 수 없었다. 작가가 자생력의 뜻을 담아 뿌리와 줄기로 조각 같은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터전의 뿌리를 잊지 않고, 늘 찾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우리은행의 기업 정신이 로비의 작품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도상봉의 1956년작 ‘서울전경’. 우리은행이 소장한 가장 오래된 작품 중 하나이며 정물화로 유명한 도상봉의 희소한 풍경작업이고 1950년대 중반 서울의 실경을 상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문화재급의 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사진제공=우리은행


우리은행의 소장 작품 중 가장 귀한 것을 꼽으라면 도상봉(1902~1977)의 ‘서울전경’이 첫 손이다. 백자 달항아리에 꽂힌 꽃 정물로 유명한 도상봉의 작품은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돼 국립현대미술관에 여러 점 기증될 정도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고, 미술사적 의미도 크다. 인기 높았던 정물화에 비해 풍경화는 적은 편이다. 자연 예찬을 담아 바다와 숲 그림을 몇 점 남겼고 성균관대 근처인 종로구 혜화동 작업실 주변과 종종 찾아가던 고궁 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려 남겼다. 폭 145㎝, 높이 111㎝의 대형 그림인 도상봉의 1956년작 ‘서울전경’은 우리은행 소장품 중 연도가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작품 중 하나다. 진한 초록의 산과 나무들, 벌겋게 달아오른 붉은 땅이 한낮의 여름 풍경임을 짐작하게 한다. 저 멀리 북한산과 북악산이 펼쳐졌고 그림의 왼쪽 구석에는 지금의 광화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도 보인다. 한국전쟁으로 한때 폐허 같았을 서울이 재기를 위해 안간힘 쓰던 시절을 화가는 큰 산에 폭 안긴 도심 풍경으로 묘사했다. 이제 막 들어서기 시작한 각진 빌딩들과 오래된 고궁, 정겨운 초가집이 공존한다. 그림 앞쪽으로는 골목길에 나앉은 아낙과 아이들도 보인다.

도상봉이 이렇게 큰 캔버스에, 주요 건물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인 서울 풍경을 그린 작품은 우리은행의 ‘서울전경’이 유일하다. 특유의 섬세한 필력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데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산업화로 도약하려는 서울의 1950년대 중반 실제 이미지를 상세하게 묘사했다는 사료적 가치도 크다. 근대 유물로서 향후 국가등록문화재가 되기 충분하다. 현재 이 작품은 로비에 없다. 은행 측이 귀중한 작품의 손상을 우려해 수장고에 두고 관리하고 있다.

김병종 '생명의 노래'


우리은행 본점이 외부와 연결되는 출입구는 1층 뿐만 아니라 지하 1층에도 있다. 지하에 조성된 ‘은행사박물관’ 옆 긴 벽은 ‘바보예수’ ‘독도’ 연작으로 유명한 김병종의 대표작 ‘생명의 노래’가 차지했다. 가로 360㎝의 대작이다. 살아있음을 감사히 여기게 만드는 붉은 꽃 주변으로 학과 나비가 노닐고 소나무·구름·바위 등이 펼쳐진다. 십장생도와 민화의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림 속 구성 요소들은 각각 명예와 장수, 건강과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물이기도 한다. 오가는 사람에게 그림이 속삭인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우리은행 본점 지하1층 은행사박물관 옆 로비를 차지한 김병종의 '생명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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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글·사진=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친절한 금자씨는 예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날 세운 풍자와 노골적인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위작 논란도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착한미술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으로 쏘다니며 팔자 좋은 기자. 미술, 문화재 전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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