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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경제의 飛翔(비상) 예언하듯···하늘 향하는 새들의 힘찬 날갯짓

[조상인의 로비의 그림-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

외환銀 본점 건립때 제작된 김형근 역작

여명·황혼 주제로 10m 캔버스 두폭 채워

일상 소중함 묻는 김아타의 사진부터

최만린·전국광·박석원의 조각도 탁월

박영선 여인 그림, 유년시절 향수 자극

구 외환은행 본점인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 1층 로비는 김형근 작가의 대형 벽화 아래로 걸린 안창홍의 '패션쇼인상', 최만린의 '태' 등 해당 작가의 전성기 대표작들로 채워져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인 을지로 큰길에 자리 잡은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은 합병 이전에 30년 이상 ‘외환은행 본점’ 건물로 위용을 자랑했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5번 출구에서 나와 건물을 바라보면 명동 입구 쪽 길목에 동상 하나가 보인다. 의열단의 일원으로 독립 투쟁을 벌인 나석주(1892~1926) 열사의 동상이다. 그는 일제가 경제적 착취를 위해 설립한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폭파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1926년 12월 28일, 남대문 쪽 조선식산은행에 폭탄 한 개를 던지고 큰길 건너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달려가 폭탄을 던지고는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결했다. 그가 생을 마감한 의거 터이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차지했던 자리를 허문 이곳에 1980년 당시 최대 규모의 건축물 중 하나로 들어선 것이 바로 외환은행 본점이었다. 2015년 하나은행과의 합병 이후 지금은 하나금융그룹 본사가 됐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기업은 고풍스러운 미술품을 소장했다는 매력이 있고, 그런 건물의 로비에서는 사옥 완공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작가가 누구였는지를 엿보는 재미가 있다. 외환은행의 신축은 1970년대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한 초기 도심 재개발 사업의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1960년대 정부종합청사·박물관 등이 건축으로 국가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었다면 뒤이은 은행 신축은 경제성장의 가능성과 희망을 상징하는 일이었다. 외환은행은 김수근·김중업·나상진 등 당대 최고의 건축가를 포함한 12명의 지명 현상설계로 진행됐고, 은행의 역할에 특화한 김정철이 이끄는 정림건축이 뽑혔다. 1973년 설계부터 완공까지 7년이 걸릴 정도로 공을 들인 건물이라는 사실을 그 안에 걸린 그림들이 증언한다.

조각가 박석원의 '적-8016'을 중심으로 박영선의 '9월의 정'(왼쪽)과 윤중식의 '노을'이 1980년 완공된 구 외환은행본점인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 1층 로비를 채우고 있다.


정문으로 들어섰을 때 오른쪽 벽 상단부의 폭 10m 전체를 채운 벽화는 김형근 화백의 역작이다. 엘리베이터 통로를 지나 북쪽 벽까지 각각 세로 185㎝·970㎝의 초대형 벽화 2점이 건축물과 함께 완성됐다. 1930년생인 김형근 화백은 1970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출품해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가다. 묘사력이 좋은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돼 향수 어린 인물화나 정물화·풍경화로 유명한 작가인데 ‘영원한 비상(飛翔)’이라 칭한 이 작품은 반추상이라 아주 이채롭다. 당시 은행 건물로서 동양 최대 규모를 목표로 삼았던 외환은행은 당대 최고의 화가인 김형근에게 작품을 의뢰하며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뜻대로 하시라’고만 했다. 작가는 두 벽을 각각 ‘여명’과 ‘황혼’을 주제로 채우리라 마음먹었다. 평소 즐겨 그리던 하늘·구름·태양·달·새·꽃 등의 소재를 택했고 영원성을 응축한 상징적 형식으로 그려냈다. 1980년 여름, 재료 조사를 위해 동남아와 일본까지 다녀온 작가는 하루 6시간 이상 작업에 매달려 벽화를 완성했다. 정문 쪽 벽화에는 동트는 새벽의 푸른 기운이, 후문 쪽 벽화에서는 황혼의 붉은 기운이 좀더 두드러진다. 색면으로 구현한 하늘을 날개 큰 새와 활짝 핀 꽃이 가로지르며 웅비하고 있다. 곧 날아오를 한국 경제를 예언하기라도 하듯.

정문 정면은 생생한 필력으로 유명한 김차섭의 대형 돌 그림이 차지했다. 엘리베이터 통로를 따라 후문 쪽으로 가다 계단부에서 마주치는 그림은 안창홍의 1995년 작 ‘패션쇼인상’. 현대사회의 속성과 대중문화의 특징을 얄미울 정도로 노골적으로 포착해내는 작가가 화려한 겉모습이 꼭 ‘박제된 미의 가치’로 보인 패션쇼에 대한 인상을 그렸다. 후문 쪽 로비 벽면 양쪽은 사진작가 김아타의 대표작 ‘온에어 시리즈’가 차지했다. 사람 없이 건물만 남은 휑한 도심 사진으로 보이지만 이 안에는 고도의 철학적 고뇌가 담겨 있다. 김아타는 뉴욕 도심의 번화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장노출 기법으로 주변을 촬영했다. 그 결과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 서둘러 걷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묵묵히 한자리를 지킨 건물과 표지판만 사진으로 남았다. 한때 오가는 인파로 북적였을 이 로비에서 김아타의 작품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이 어떤 의미인지를 묵직하게 질문했을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그 물음은 코로나19로 인적이 드물어진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곳 로비는 회화와 사진도 좋지만 조각이 탁월하다. 김아타의 사진 앞쪽으로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 최만린의 대표작 ‘태(胎)’가 놓여 있다. 격변의 근대기를 관통하며 전쟁의 혹독함을 온몸으로 경험한 작가는 생명의 근원에 대해 파고들었고 울룩불룩 내장을 닮은 듯한 추상 조각으로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맞은편은 전국광의 ‘적(積)-수직변이Ⅵ’이라는 추상 조각이다. 평평한 돌을 여러 겹 붙여 세운 다음 아래로 힘을 주어 꽉 누른 듯한 형상이다. 작가의 관심은 변화무쌍한 자연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작품은 마치 휘어진 지층 한 조각을 구부러뜨린 책장처럼 자유자재로 놀리는 작가의 역량을 보여준다. 반대편인 정문 쪽 로비에는 박석원 조각가의 ‘적-8016’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쌓을 ‘적(積)’을 제목으로 갖고 있다. 돈을 쌓아 불리는 은행의 역할을 고려해 작가를 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가능하다. 전국광과 박석원 두 작가 모두 1970년대 이후 ‘적’ 연작을 진행해왔다. 박석원에게 ‘적’은 반복을 통한 확산의 의미다. 끊어진 삼각형 같은 그의 추상 조각은 잘린 공간에서 감지되는 여운, 잇고자 하는 의지를 뿜어낸다.

로비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정문 쪽으로 오면 박석원의 조각을 사이에 두고 박영선(1910~1994)의 ‘9월의 정(情)’과 윤중식(1913~2012)의 ‘노을’이 걸려 있다. 두 화가 모두 한국 근대기 화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거장들이다. 박영선은 일본에서 그림을 배웠으나 파리 유학 후 이국적 풍경화와 여성 누드화를 선보였고, 한 발 더 나아가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은 몽환적인 추상 경향을 드러냈다. 특히 유명한 것은 한국의 여인을 여신 같은 이상적 모습으로 표현한 그림들인데, 그 안에 어머니와 누이를 기억하게 하는 서정성까지 응축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빨간 민소매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은 녹음이 우거진 바깥 풍경이 보이는 커다란 창틀에 걸터앉았고, 고운 한복을 차려 입은 여인은 선물 받은 듯한 장미꽃을 가위로 다듬고 있는 여유로운 한때다. 전통 목가구와 도자기, 상 위에 놓인 석류 등 부러울 것 없는 시간을 보여주는 그림이 로비를 지나는 방문객들에게 지나간 시절의 향수, 어린 시절의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그 옆에 걸린 윤중식의 ‘노을’은 아련한 그리움을 층층이 포개지는 풍경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저 멀리 구름이 가로지르는 푸른 하늘 아래로 초록 산, 누런 땅이 펼쳐지고 교회 첨탑이 높다랗게 솟은 마을과 넉넉함을 품은 들판을 건너온 비둘기들이 담장에 앉아 노니는 모습이다. 윤중식은 아침·황혼·석양·강변·태양, 그리고 일련의 계절 연작에서 시간을 얹듯 풍경을 수평 층으로 쌓아 올리며 독보적인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했다. 그림은 마치 화가와 함께 이 모든 풍경을 내려다보는 듯한 착각 속에서 ‘그리운 그곳’ 혹은 ‘가고픈 이상향’을 꿈꾸게 한다. 이 은행에서 대한민국도 꽤 많은 것들을 쌓고 이룩했으며 여전히 지켜가고 있음을 확인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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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글·사진=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친절한 금자씨는 예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날 세운 풍자와 노골적인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위작 논란도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착한미술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으로 쏘다니며 팔자 좋은 기자. 미술, 문화재 전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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