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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금융경제동향
"韓은 CPTPP 역량 높일 최적 파트너···당당하게 日빗장 풀어야"

[서경이 만난 사람] 유명희 경제통상대사

반도체 등 선진기술 강점 전략적 활용 땐 개방 압력도 조절 가능

'반도체 특별법' 통상 갈등 소지…공급 과잉 땐 분쟁 불붙을 수도

美中 당분간 격돌…대체 불가 기술 확보해야 韓 운신 폭 넓어져

유명희 경제통상대사./오승현 기자




정부는 다음 달 초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신청할 계획이다. 협정 참여를 놓고 장고를 거듭했으나 중국과 대만이 잇달아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정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다만 가입 신청 후에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미국이 떠난 뒤 CPTPP를 이끌어온 일본이 한국의 가입을 마뜩잖게 여기는 터라 가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협정에 가입하려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앞세우며 당당하게 협상에 임해야 합니다. 일본도 CPTPP를 보다 생동감 있는 협정으로 만들고 싶다면 응당 우리를 맞아야 하고요.”

지난 15일 서울경제 본사에서 만난 유명희 경제통상대사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자신감이 묻어났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묻는 질문에 그는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손꼽히는 무역 강국이자 반도체와 같은 핵심 품목의 제조 기술과 설비를 동시에 가진 국가”라며 “글로벌 공급망이 분열하면서 안정적인 공급 기지를 가까이 두려는 회원국들의 수요가 커지고 있는 만큼 이를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유 대사는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중국의 상황을 짚어가며 눈앞에 닥친 통상 현안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대담=김현수 경제부장 hskim@sedaily.com

유 대사가 “당당한 협상 태도”를 주문한 것은 담론이 아닌 실리적인 판단이다. 상품 개방 수준이 높은 CPTPP 가입을 위해 한국은 일본산 제품에 대한 일부 관세를 내려야 한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일본과의 교역에서 매년 200억 달러 안팎의 무역 적자를 냈는데 자동차 등에 둔 상품 관세율이 추가로 낮아지면 무역 적자 규모는 더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 대사는 “CPTPP에 가입하게 되면 한국으로서는 소재·부품·장비 부문이나 농산물 시장의 개방 압력이 커질 것”이라며 “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가치를 앞세울 때 개방 압력을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 대사는 일본을 제외한 다른 회원국들이 “쌍수를 들고 한국의 가입을 바라는 상황”을 일본이 계속해서 외면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통상교섭본부장 재임 당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회담장에서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과 마주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각국이 RCEP처럼 다자간 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국가 간 공급망을 안정시키기 위함인데, 정작 일본은 수출 규제로 공급망을 훼손하고 있다고 강하게 지적했다”고 회고했다. 유 대사는 “의장국으로서 CPTPP의 역량을 높여야 할 일본이 정치적 문제로 한국의 가입을 반대한다면 한국뿐 아니라 다른 회원국들의 비판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일 관계의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 부문도 한국과 거리를 두는 일본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국 간 신뢰가 한 번 무너지면 상대로부터 들여오던 물품을 웃돈을 주고라도 제3국에서 가져온다”면서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일을 지양하고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 미래 지향적인 교역 관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대사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각국 정부가 잇달아 내놓는 지원책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연구개발(R&D) 및 시설 신축 등에 연방정부가 직접 재정 지원을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미국반도체법안(CHIPS for America Act)’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각종 세제 혜택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을 조만간 도입할 예정이다. 각종 지원책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배치돼 통상 갈등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없지는 않지만 자칫 반도체 패권 다툼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목소리에 묻히는 형국이다. 유 대사는 “통상 갈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규범과 현실을 동시에 살펴야 한다”며 “쏟아지는 지원책이 통상 규범에 부합하는지를 살피면서 실제 통상 분쟁이 벌어질 소지가 있는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각국이 정치·경제적 셈법에 따라 선택적으로 통상 분쟁을 제기하는 만큼 ‘미국도 하는데 우리가 문제 될 게 있겠나’라는 식의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대사는 수출이 많고 대외무역 흑자를 보는 국가일수록 통상 분쟁에 노출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각국 업체들이 똑같이 국가 지원을 받아 반도체를 만들더라도 미국은 내수 시장이 커 국내 수요가 많지만 한국은 수출 물량이 많다”면서 “수출이 많은 나라는 통상 분쟁에 얽힐 소지가 더 많다”고 우려했다. 반도체 대란의 시대가 저물고 공급과잉 시점으로 접어들면 국가 간 통상 분쟁이 격화할 가능성이 특히 크다. 유 대사는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난이 심각할 때라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 “글로벌 공급과잉 시기에 피해를 본 국가들이 우리에게 화살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우방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전임 정부 때부터 높게 평가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대외무역 적자의 원인으로 꼽아 협정 폐기를 공약하지 않았나”라면서 “지금 당장 문제가 없더라도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패권 다툼에 대비해 정부 지원은 불가피하지만 향후 불거질 수 있는 무역 분쟁에도 함께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명희 경제통상대사./오승현 기자


유 대사는 첨단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범용 제품 생산에 머물러 있다가는 글로벌 공급과잉 사태가 벌어지면 통상 분쟁이 불붙을 수 있다”면서 “정부 지원을 발판 삼아 한국이 아니면 달리 구할 데가 없는 제품과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첨단 기술과 제품을 확보하면 미국과 중국의 편 가르기 속에서 한국의 운신의 폭도 넓어질 것으로 봤다. 그는 “우리처럼 세계시장의 의존도 높은 국가는 어느 한 곳과 거리를 두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면서 “미중 갈등에 끌려다니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대체할 수 없는 첨단 기술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고 했다.

유 대사는 미중 간 갈등 관계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전임 트럼프 정부와 마찬가지로 조 바이든 행정부 역시 제조업 회복과 중산층의 경제 능력 회복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제조업과 중산층의 몰락이 중국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는 견해는 정권을 초월한 공통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철강·자동차 산업이 집중된 ‘러스트벨트’의 경제 상황이 미국의 국내 정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 대사는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의 통상 당국 수장을 거론하며 미국의 대중(對中) 정책을 짚었다. 그는 “둘을 모두 상대했는데,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직설적이고 충돌을 불사하는 스타일이라면 캐서린 타이 USTR 대표는 생각을 같이하는 우방국과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라면서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정책의 본질은 같다”고 평가했다.

유 대사는 미중 갈등에 따라 지정학적 위험 요인이 두드러질 것으로 봤다. 그는 “이전에는 각국이 다자 규범이 허용하는 범주에서 대외 정책을 설계해 공급망의 안정성이 유지될 수 있었다”면서도 “(다자 규범이 무력화된 만큼) 삼성을 비롯해 해외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이 경제 논리뿐 아니라 지정학적 위험 요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 대사는 디지털 부문을 선도하기 위해 서버 현지화나 국경 간 데이터 이전 제한 등 각종 규범을 완화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국내 사업자가 디지털 콘텐츠를 해외로 수출할 때 서버 현지화 규정이 엄격히 적용되면 규제를 맞추기 위해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서 “중국처럼 내수 시장이 큰 나라와 달리 해외시장 의존도가 높은 우리가 디지털 부문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으로 나갈 수 있게 길을 가능한 한 틔워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이 앞장서 꺼내든 탄소국경세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개별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달라 조기에 내부 의견을 조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일단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수입 상품에 대한 대응 수위가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 대사는 “회원국 중에서도 탄소국경세 도입에 반대하는 국가가 많다”면서도 “일단 제도가 시행되면 다른 나라 상품이 역내로 쉽사리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방적으로 강경한 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탄소세 부과 흐름에 동참할지를 묻는 질문에는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타이 대표가 통상에 환경의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인 만큼 나름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She is… △1967년 울산 △서울 정신여고 △1990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1991년 행시 35회 △1995년 통상산업부 세계무역기구담당관실 사무관 △1999년 밴더빌트대 로스쿨 △2010년 아태경제협력체 사무국 파견 참사관 △2014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실 외신대변인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 국장 △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2021년 외교부 경제통상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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