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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고립이 사회를 죽이고 있다

박민영 골프팀장

골퍼 왓슨, 불안 탓 13kg 급감 공포

‘대화’ 통해 고립 벗어나며 건강회복

고립감, 전체주의·폭력성 키울 수도

'자발적 소통'으로 자존감 유지해야


“골프가 날 죽이고 있었습니다.”

골프 스타 버바 왓슨(43·미국)은 최근 출간한 자서전 ‘업 앤드 다운: 인생이라는 코스에서의 승리와 투쟁’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왼손잡이 왓슨은 정석 스윙과는 거리가 있지만 최고 메이저 대회로 꼽히는 마스터스 2회 우승을 포함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통산 12승을 거둔 정상급 선수다. 폭발적인 장타와 틀에 얽매이지 않는 플레이 스타일은 물론 두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자선 재단을 운영하는 등 따뜻한 인간적인 면모도 겸비한 그다.

그런 왓슨이 골프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한 사연은 이렇다. 지난 2017년 살이 빠지기 시작해 13㎏이 줄어들자 그는 인후암에 걸려 2010년에 앙상한 모습으로 사망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의사 진단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그는 “상금 순위, 세계 랭킹, 인터뷰, 악성 댓글 등에 대한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고 썼다.

왓슨이 찾은 해결책은 ‘소통’과 ‘개방’이었다. 아내 앤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붙잡은 불안과 스트레스가 복통과 체중 감소를 일으켰음을 깨달았다. 아내·친구·동료들에게 인생의 좋고 나쁨에 대해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체중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왓슨의 정신 건강을 해치고 있던 건 불안감과 스트레스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고립’이라 볼 수 있다. 인간에게 불안과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그에 대처하는 방법에 따라 마음과 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의 강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현대인은 다양하고 다중적인 관계 속에 생활하지만 흉금을 터놓을 대상은 많지 않다. 고도의 성적 지상주의와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 구성원의 고립감과 고독감은 위험 수위를 넘는다. 지난해 기준 23.5명(인구 10만 명당)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 10.9명의 2배가 넘는 우리나라의 자살률 1위 오명은 고립과 떼어놓고는 설명이 어렵다. 전년 대비 20대 12.8%, 10대 9.4%, 30대 0.7% 등 30대 이하에서 자살률이 올라간 점은 더 우려스럽다.

개인의 고립은 사적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고립은 사회를 죽인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줬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개인을 불안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했다.

프롬에 따르면 자유를 얻은 대가로 고립된 인간이 고립감과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하는 행태는 권위주의, 파괴성, 자동 순응성 등이다. 권위에 의존해 자신과 자유를 반납하는 권위주의 성격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전체주의를 불러왔다. 성장과 생존을 추구하는 삶이 억압되면 삶의 에너지는 파괴의 에너지로 변하고 그 에너지는 대상과 자기 자신을 제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고 한다. 자동 순응성은 문화적 양식 등 외부 요인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고독과 불안을 잊는 것을 넘어 자아까지도 잃고 마는 것을 말한다.

현대 우리 사회도 근대의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개인들은 자아와 개성·판단력을 상실하고 권위, 진영 논리, 젠더 이슈, 유행 등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극단적 선택이나 폭력으로 상황을 해결하는 행동 등도 고립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롬은 고립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사랑과 일이라는 ‘자발적 활동’을 제시한다.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 불안·고독·스트레스에 조종당하지 말고 스스로 개방과 소통에 나서 자존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물론 사회적 돌봄 같은 장치도 필요하지만 그런 것이 개개인의 고립과 정신 건강 문제를 책임지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현실은 일러준다. 프롬의 말이 어렵다면 바닥을 경험했던 왓슨의 말은 어떨까. “주위 사람과의 나눔이 내게 자유를 줬고, 그래서 이제 나는 무엇이든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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